반도체 시장에 '인텔 쇼크'…주가 22% 폭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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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반도체 경기가 낙관만 할 수 없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가격의 하락 행진이 멈추지 않는데다 지난 주말 반도체 업종의 대표주인 인텔사 주가가 22%나 급락했기 때문이다.

인텔은 21일 유럽의 PC 수요 둔화로 3분기 매출이 2분기의 83억달러에서 3~5% 늘어나는 데 그쳐 당초 예상치 94억달러에 못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총 수익률도 당초 예상했던 63~64%에서 62%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됐다. 이 때문에 인텔의 주가는 급락했고, 파장은 곧바로 아시아.유럽으로 번졌다. 삼성전자의 주가도 22일 13.6% 하락해 20만원 아래로 처졌다.

업계는 최근 반도체 시장에 드리운 그림자를 반도체의 최대 수요처인 PC 수요가 좀처럼 늘지 않으면서 일어난 현상으로 분석한다.

세계 최대 컴퓨터 칩 메이커인 인텔의 차기 중앙처리장치(CPU)지원이 늦어지면서 PC 신규 수요가 늘지 않고, 이에 따라 메모리 반도체 수요도 줄어드는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예년에는 새학기인 9월부터 PC 수요가 회복됐쨉?올해는 그런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연평균 20% 이상 성장했던 PC 시장이 올해는 17% 정도로 신장률이 낮아질 전망이다. 인텔의 주가 하락도 PC 수요 감소에 따른 실적 부진이 주된 이유다.

업계는 인텔이 올 초 램버스용 CPU와 칩셋만 지원하겠다던 당초 입장에서 DDR(더블 데이터 레이트)도 지원하기로 바꾼 점이 PC 생산 및 마케팅에 차질을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인텔이 아직까지 DDR에 대한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하고 뚜렷한 개발 성과를 내놓지 않자 게이트웨이.델 등 메이저 PC 업체들은 차기 PC 제작 방향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또 램버스보다 가격이 싼 DDR를 채용하면 PC 가격이 훨씬 내려가리란 소비자의 기대감 때문에 구매 시기가 늦춰지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는 10월 인텔의 디벨로프 포럼에서 DDR용 CPU 등의 개발 성과가 발표되고, 뒤이어 각 PC 업체가 제작 방향을 결정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전자 사업관리팀 윤민권 부장은 "램버스든 DDR든 모듈 개발을 끝낸 상태지만 PC 업체의 구체적 전략이 나오지 않아 주춤한 상태" 라며 "PC 제작 방향만 나오면 생산량을 늘리고 본격적인 마케팅에 나설 수 있다" 고 말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10월 10일 인텔이 펜티엄Ⅳ를 출시하고, PC 수요가 급증하는 연말 경기와 맞물리면 최근의 반도체 가격 하락 국면을 벗어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시나리오를 기대했다.

삼성전자 마케팅팀 안기종 부장은 "올 초 반도체 가격을 6달러대로 책정했던 것에 비춰 보면 최근 반도체 가격은 아직까지 괜찮은 편" 이라며 "반도체 시장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10월 이후에나 가능할 것" 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투자은행인 웨스트파리아 인베스트먼트의 피터 카딜로는 "22일 나스닥은 떨어졌으나 다우 지수는 휴렛패커드의 주가 호조로 81.85포인트 올랐다" 며 "투자자들이 인텔 매출 부진에 놀라기는 했으나 이를 인텔에 한정된 사안이며 한시적 현상으로 이해한 때문" 이라고 분석했다.

비관적인 시나리오도 있다. 현재 PC의 최대 수요처인 유럽과 미국에서 수요가 늘지 않는 것은 기름값이 오르고 미국 증시가 침체하면서 소비를 자제하는 움직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단순한 PC 업계의 사정 때문에 생기는 조정이 아니라 외생적인 요인이 맞물려 시장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US 뱅코프 파이퍼 제프레이의 애널리스트 아쇼크 쿠마르는 "인텔 칩은 달러 단위로 팔리기 때문에 유로화 약세에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다" 며 "유럽의 반도체 수요 둔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세계 반도체 경기가 정점을 지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고 말했다.

월스트리트 저널과 파이낸셜 타임스 등 경제전문지도 향후 반도체 경기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러나 국내 반도체 업계는 ▶97년 이후 설비투자를 하지 않아 현재 설비가 모두 감가상각이 끝난 상태고▶세계적으로 대규모 설비 확장이 이뤄지지 않아 공급 과잉 상태는 아니며▶반도체 사업에서 D램의 비중을 줄여가는 구조조정 과정에 있으며▶이동통신 등의 발달로 반도체의 PC 의존도가 점차 줄어들고 있어 아직은 비관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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