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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휘호(揮毫)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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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새해가 되면 훌륭한 서예가나 유명인사가 신년을 기념해 뜻이 깊고 교훈이 될 만한 어구를 큰 붓을 휘둘러 쓴다. 이렇게 붓을 휘둘러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것을 일러 휘호(揮毫)한다고 한다. ‘휘호’의 揮는 ‘휘두를 휘’이고, 毫는 ‘가는 털 호, 붓 호’이니 붓을 휘두른다는 뜻이다. “김 형, 나를 위해 한 폭 휘호해 주시겠습니까?” “서예가 박 씨는 휘호를 끝낸 뒤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동사의 명사적 용법)처럼 당연히 ‘휘호’는 동사로 사용된다.

 다음 예문을 보자.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1일 ‘相生共榮 平和統一(상생공영 평화통일)’이라고 직접 쓴 휘호를 통일부 류우익 장관에게 보낸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그것은 즉흥적으로 쓴 게 아니라 심사숙고한 뒤 쓴 휘호임을 알 수 있다.” “중국의 잡지인 ‘중국서화예술’은 지난달 3일 한국의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신년 휘호로 ‘臨事而懼(임사이구)’라는 사자성어를 쓰고 있는 사진을 웹사이트에 게재했다.” “손수 붓을 들어서 일필휘지하다가 회심의 휘호가 나올 때에 그 즐거움이란 실로 비할 데가 없다.”(안병욱, ‘사색인의 향연’)

 예문에 쓰인 ‘휘호’는 쓰임새가 좀 다르다. 동사의 명사적 용법이 아니라 명사로 쓰인 게 분명하다. ‘휘호’를 꾸미는 말이 ‘직접 쓴’ ‘쓴’이란 점에서, 그리고 ‘신년 휘호로’ ‘회심의 휘호’란 어구에서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붓을 휘둘러 글씨를 쓰는 행위를 이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 쓴[쓰인] 글씨나 작품을 지칭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사전의 뜻풀이에 이런 의미를 덧붙여 실어 주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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