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재룡의 행복한 은퇴 설계] 전원주택서 보내는 노후, 도시보다 돈 더 들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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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

‘앉은 자리가 팔자’라는 말이 있다. 거동이 불편해지고 변화를 싫어하는 은퇴 생활자에게 어디서 거주하는지는 삶 전체에 큰 영향을 준다. 선진국에서는 ‘노후 준비는 집에서 시작해서 집에서 끝난다’고 말하기도 한다. 주위에 어떤 편의시설과 병원이 있는가에 따라 생활의 만족도가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시세차익을 노리거나 자녀의 학교를 위해 자주 이사하던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기준이 필요하다.

 중견기업에 다니는 김모씨(59)는 1년 전 경기도 양평에 작은 전원주택을 마련해 꿈에 그리던 전원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 있는 회사까지는 약 1시간 정도 걸려서 출퇴근에 큰 어려움이 없는 데다 앞으로 1년 정도 후에 퇴직할 계획이다. 하지만 문제는 부인에게서 시작됐다. 원래 김씨의 부인은 주변에 친구가 많고 사교적이었다. 그러나 양평으로 이사한 다음 말수도 줄고 불만이 많아 보였다. 게다가 몇 개월 전 간단한 수술을 받고 난 후 서울 시내 병원으로 힘들게 통근치료를 다니면서 남편과 말다툼이 잦아졌다.

 김씨와 같이 은퇴 후에 전원생활을 꿈꾸는 이들이 많다. 국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은퇴한 다음 전원생활을 희망하는 비율이 45.18%로 도시생활 희망 비율(33.76%)보다 높다. 아예 은퇴 후 농사를 지으러 귀농하는 사람들도 최근 급증하고 있다.

 많은 국민이 복잡한 도시에 살다 보니 생활비가 저렴하고 경치가 좋은 전원에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전원생활을 선택한 다음 거처를 옮기고 나면 이를 되돌리기가 어렵고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에서 몇 가지 사항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첫째, 노후를 전원에서 보내는 것이 도심에서 살 때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들 수 있다. 물론 당장은 소규모라도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면 생활비를 절약할 수 있다. 하지만 노후 후반기에 아프기라도 하면 병원에 왔다 갔다 하느라 더 많은 돈을 써야 한다. 또 나중에 홀로 남은 배우자가 도시로 되돌아올 경우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둘째, 전원생활을 하게 되면 그동안 알고 지냈던 사회와 단절되기 쉽다. 직장 동료나 친구들, 부인의 이웃과 친구들로부터 떨어지고 새로운 이웃들과 지내야 한다. 이 밖에도 전원주택과 텃밭을 유지하는 일이 결코 쉽지 않고 치안 등이 상대적으로 취약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많은 어려움도 있지만 장점 역시 적지 않다. 미 코넬대 고령화연구센터의 조사 결과에 의하면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사는 노인들이 정신적으로나 인격적으로 훨씬 더 풍요로운 삶을 영위한다고 한다. 또 건강이 좋아지고 수명이 증가하는 효과도 크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다른 방식도 생각해볼 수 있다. 전원주택과 도심의 작은 집을 동시에 가지고 겨울이나 아픈 시기에는 도심에서 살고 은퇴 직후 활동기나 따뜻한 시기에는 전원에서 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우재룡 삼성생명 은퇴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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