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축구의 기적…1부리그 팀들 꺾고 4강

미주중앙

입력

월드컵, 유럽축구선수권, 유럽 챔피언스리그를 휩쓸고 있는 세계 최강 스페인 축구가 ‘미란데스의 마법’에 걸렸다.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퇴근 후에 모여 축구를 하는 선수들로 구성된 스페인 3부리그(세군다B) 소속 CD 미란데스가 2011~2012 코파 델 레이(스페인 국왕컵) 준결승에 진출하며 감동의 드라마를 쓰고 있다.

스페인의 프로·아마추어 축구팀을 망라한 이 대회에서 3부리그 팀이 4강에 오른 것은 2002년 피게레스 이후 10년 만이다.

미란데스는 24일 홈 구장 ‘에스타디오 데 안두바’에서 열린 대회 8강 2차전에서 프리메라리가 소속 에스파뇰을 2대1로 꺾었다.

에스파뇰과 1·2차전 합계 4대4로 비긴 미란데스는 원정 득점(2점)에서 앞서 4강행(行) 티켓을 따냈다. 코파 델 레이 통산 4회 우승에 빛나는 에스파뇰은 스페인 바르셀로나 지역에서 FC바르셀로나 다음으로 꼽히는 명문 클럽이다.

미란데스는 1927년 스페인 북부의 작은 도시 미란다 데 에브로를 연고로 창단된 팀이다. 1944~1945시즌부터 리그에 참가한 뒤로 3부리그와 4부리그를 오갔다. 홈구장은 6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작은 시립 운동장이다.

미란데스는 한해 120만 유로(약 157만 달러)로 팀을 꾸리고 있다. 축구만 해서는 먹고 살기 어려운 선수들이 대부분. 팀의 주전 스트라이커 파블로 인판테(32)는 2005년 팀에 입단할 때부터 지역 은행에서 일했다.

오전 8시부터 은행에서 대출상담 등의 업무를 보고, 퇴근 후 50㎞ 떨어진 경기장에 가서 훈련한다. 인판테는 “선수들 대부분 다른 직업을 갖고 있어 퇴근 후 경기장까지 엄청난 거리를 달려와야 한다”며 “하지만 이런 불경기에 직장을 다니며 축구까지 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2010년 이 팀을 맡은 카를로스 포우소(51) 감독도 작년까지 선박회사에서 일하며 팀을 이끌었다.

미란데스는 포우소 감독이 온 뒤 달라졌다. 지난 시즌 3부리그 2그룹 20개 팀 중 2위를 기록하며 역대 최고 성적을 냈다. 올 시즌도 13승 7무 1패로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다.

포우소 감독은 “선수들이 요행을 바라지 않고 열정적으로 노력한 덕분”이라고 말했다.

미란데스는 이번 대회 32강전에서 ‘노란 잠수함’으로 불리는 명문 클럽 비야레알과 맞붙었다. 1차전에서 1대1 무승부를 기록한 미란데스는 2차전을 2대0 승리로 장식하며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망신을 당한 비야레알은 후안 카를로스 가리도 감독을 전격 경질할 정도로 충격파에 시달렸다.

라 리가 5위(승점 28)를 달리는 강호 에스파뇰과의 8강전은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았다. 미란데스는 1차전에서 후반 40분까지 2―0으로 앞서다 종료 5분을 남기고 거짓말처럼 내리 3골을 내주며 패했다. 3부리그 팀의 한계라는 비아냥이 쏟아졌지만, 미란데스는 더 큰 반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란데스는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후반 2분 에스파뇰의 후이 폰테에게 선취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하지만 주장 인판테가 10분 뒤 페널티 박스 왼쪽 부근에서 기습적인 오른발 중거리 슈팅으로 동점골을 넣었다. 이번 대회에서 나온 그의 7번째 골이었다.

기적의 드라마는 경기 종료 직전 완성됐다. 인판테가 페널티 박스 왼쪽에서 올린 프리킥 크로스를 수비수 세사르 카네다가 다이빙 헤딩슛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미란데스 선수들이 카네다를 층층이 에워싸며 기뻐했고, 경기장을 가득 메운 6000여 홈 관중은 믿기지 않는 승리에 열광했다.

스페인 언론들은 “영웅 미란데스(Heroico Mirandes)” “안두바의 기적(El Milagro de Anduva)”이라며 미란데스의 승리를 전했다. 스페인 국가대표 세스크 파브레가스도 자신의 트위터에 “믿을 수 없다. 이토록 극적인 것이 바로 축구”라고 썼다. 포우소 감독은 “지금 이 순간만은 주제 무리뉴(레알 마드리드 감독)보다 행복하다”고 했다.

평범한 은행원에서 단숨에 전국적인 스타로 떠오른 인판테는 경기후 감격스런 표정으로 더 큰 희망을 말했다.

“안필드(리버풀 홈구장)의 선수 입장 통로엔 ‘여기는 안필드(This is Anfield)’란 문구가 있어요. 우리는 그것을 본떠 ‘여기는 안두바’라는 문구를 새겼어요. 언젠간 리버풀같은 명문팀이 되겠다는 우리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미란데스의 영웅들은 다음달 1일 4강 1차전에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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