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김정일은 쟁취한 권력, 김정은은 주어진 권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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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김정은 체제,
북한의 권력구조와 후계
히라이 히사시 지음
백계문·이용빈 옮김
한울아카데미
477쪽, 2만9000원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그의 후계자 김정은 최고사령관의 권력 구축과정에 대한 평가는 확연히 다르다. 김정일이 치열한 투쟁을 거친 ‘쟁취한 권력’이었다면 김정은의 그것은 ‘주어진 권력’이란 얘기다.

 일본의 대표적 북한통인 저자는 이런 인식에서 한발 더 나가 “김일성 주석으로부터 김정일 총서기(총비서의 일본식 표현)로의 권력계승은 세습이 아니다”라는 도발적 화두를 던진다.

형식만 보면 장남으로의 세습 같지만 단순한 세습이 아니었다는 해석이다. 격렬한 권력쟁취에 이어 김일성의 권력을 하나씩 벗겨내며 실권을 장악했다는 진단이다. 하지만 김정일의 선군(先軍)정치에 대해서는 “인민의 생활을 무시한, 책임으로부터의 도망이었다”며 가혹한 평가를 내린다.

 교도(共同)통신 기자인 히라이 히사이(平井久志)는 자신이 ‘김정일 시대’를 함께 달렸다고 강조한다. 1975년 기자생활을 시작해 한국특파원 등을 거치며 북한문제에 천착해 37년을 보내고 정년을 앞두고 있다. 그의 일생이, 74년 2월 노동당 5기8차회의에서 후계자로 내정돼 37년간 군림한 김정일의 삶과 겹쳐진다는 것이다. 이 책이 김정은 후계체제를 전면 배치하면서도 김정일을 중심축으로 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후계자로 추대된 2010년 9월 노동당 3차 대표자회를 비롯한 20여 개 행사의 파워 엘리트 권력서열을 꼼꼼히 도표로 정리하고 핵심 인물 사진을 곁들이는 등 북한자료를 망라한 수고가 책 곳곳에 드러난다.

  저자는 김정은 체제의 안착 여부와 관련해 어두운 전망을 내놓는다. “북한 주민들은 ‘후계체제 만들기’를 환영하지도 않고 반항하지도 않으며 절망스런 침묵 속에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히라이는 “북한이 김정은이라는 후계자를 추대하면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지만 그 길은 평탄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론 내린다.

 천황제가 유지되는 일본은 권력세습에 대한 거부감이 적은 편이다. 북한의 권력세습을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저자를 부러워하기엔 분단된 한반도의 현실이 우리에겐 너무 절박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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