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 추워요 … 덜덜 떠는 동네환자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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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직장인 이연주(25·서울 송파구)씨는 최근 수족냉증이 심해져 서울 L한의원을 찾았다가 감기라는 ‘혹’을 하나 더 붙였다. 이씨는 “배에 침을 맞고 누워 있는데 갑자기 천장에 달린 환풍구에서 찬바람이 쏟아져 나와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너무 춥다”고 불평하자 그제야 온열기를 하나 더 틀어줬다. 이 한의원에선 찬바람이 나오는 걸 막기 위해 휴지로 환풍구를 틀어막는 진풍경도 간혹 펼쳐진다.

 한의원 관계자는 “건물주가 실내온도를 정부 권장치(18~20도)로 낮추기 위해 오후 1~6시 사이에 일부러 찬바람을 내보내는 탓에 환자들 불만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 한의원에선 환자뿐 아니라 직원들도 고충이 적지 않다. 추위 탓에 직원들은 외투를 껴입고 무릎담요를 덮고 근무할 정도다.

 겨울철 실내온도를 제한하는 정부의 에너지 절감 정책과 계속되는 강추위 때문에 중앙난방식 건물에 입주해 있는 병·의원들이 추위에 떨고 있다. 대학병원 등 독립 건물을 사용하는 의료기관은 에너지 제한 정책에서 예외가 인정된다. 실제 H대학병원은 요즘 실내온도를 23~25도로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앙난방 시설을 갖춘 건물에 입주한 소규모 병·의원들은 사정이 다르다. 구청에서 불시에 건물의 실내온도를 잰 뒤 제한온도를 두 차례 어기면 최대 3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탓에 건물주들이 온도 관리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병원업계 관계자는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중앙난방식 건물에 입주한 소규모 병·의원이 상당수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 병·의원이 추가로 취할 수 있는 조치라곤 온열기나 온풍기를 추가 배치하고 담요 등을 제공하는 정도뿐이다. 하지만 온열장치를 사용하면 실내 공기가 건조해져 호흡기 감염 우려가 높아지는 부작용도 있다.

 특히 면역력이 떨어진 만성질환자들에게 추위는 큰 부담 요인이 된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유재명(내분비내과) 교수는 “18∼20도의 실내 온도는 일반인이나 일반 환자에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당뇨·갑상샘기능저하증 같은 만성질환자나 노인·산모에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당뇨병 환자의 경우 찬 곳에서 혈당이 갑자기 올라가면 혈관이 수축돼 뇌졸중 등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올 설에 성남의 한 종합병원에 입원한 당뇨병 환자 박모(78) 할머니는 “입원실이 춥게 느껴져 간호사에게 호소했더니 담요를 더 덮어줬지만 혈당 관리가 잘 안 됐다”며 25일 퇴원수속을 밟았다. 산후조리 중인 여성도 춥게 지내면 이상이 생길 수 있다.

 서울성모병원 가정의학과 김경수 교수는 “병·의원이 입주한 건물에 대해선 실내온도 제한을 융통성 있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만성질환자들은 실내온도 제한으로 썰렁해진 백화점·극장·공공기관 등을 방문할 때 방한에 특히 신경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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