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상일의 시시각각

낭인 모여든‘박세일 신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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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일
논설위원

한나라당이 망가지는 걸 보면서 “할렐루야” 하며 반기는 쪽은 민주통합당 말고도 있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진영이다. 그는 2월 말까지 중앙당을 창당하고 4월 총선에서 200여 개 지역구에 후보를 내겠다고 했다. 국회 의석 70~80개를 획득하는 게 목표라고 했다. 그는 “기존 정치권에선 희망을 볼 수 없고, 국민은 새로운 정치를 원한다”는 주장을 창당 명분으로 내세운다. 당명을 ‘국민생각’이라 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란다. 박 이사장에 따르면 ‘국민생각’은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아우르는 ‘대(大)중도 정당’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념·지역·계층·세대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 함께 운영하는 ‘공치(共治) 정당’을 만들어 국민을 진정으로 위하는 정치를 하려 한다는 것이다.

 뜻으로만 본다면 갸륵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정당이 진짜로 나온다면 불역열호(不亦悅乎·어찌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다. 그러나 ‘국민생각’에 대한 국민의 생각은 별로인 것 같다. 광고와 실체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설 연휴 직전 ‘국민생각’엔 전직 국회의원 6명이 합류했다. 김경재·박계동·이신범·이원복·배일도·윤건영씨다. 이들은 기자회견에서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 시도하는 개혁과 통합이라는 과장된 몸짓은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정치를 혁파하겠다”고 다짐했다. 양당을 추상(秋霜)같이 꾸짖으며 새 정치를 부르짖는 이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김씨를 뺀 5명은 한나라당 출신이다. 2008년 18대 총선 때 한나라당 후보로 나갔으나 낙선한 윤씨를 제외한 4인은 공천에서 탈락한 이들이다. 박씨는 지난해 4월 성남 분당을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에 또 공천 신청을 했으나 미끄러졌다. 당시 경쟁자였던 강재섭 전 대표를 겨냥해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다”며 네거티브 공세를 폈다가 빈축을 샀던 사람이다. 배씨는 지난해 10월 한나라당을 탈당했다. 그리고 무소속으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해 0.38%를 득표했다. 이원복씨는 2008년 공천에서 떨어지자 바로 당을 떠났다. 이신범씨는 통일민주당→신한국당→한나라당→국민중심당→한나라당→다시 탈당의 행적을 남겼다. 김영삼→이회창→이인제→이명박을 차례로 추종하더니 이번엔 ‘박세일 신당’으로 갔다.

 김경재씨는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평민당·민주당 출신이다. 18대 총선에서 공천받지 못하자 민주당을 버렸고, 2010년 지방선거 땐 한화갑 전 의원이 만든 평화민주당의 전남지사 후보로 출마해 7.4%를 얻었다. 지난해 4월 전남 순천 국회의원 보궐선거엔 무소속으로 나가 후보 7명 중 6위(득표율 3.9%)에 그쳤다. 이들이 회견장에 나타났을 때 박 이사장은 “많은 경륜으로 정치 발전에 기여한 분들”이라고 소개했다. 과연 그럴까. 그의 선구안(選球眼)이 그 정도 밖에 안 된다면 ‘국민생각’은 싹수가 있는 걸까, 없는 걸까.

 박 이사장은 장기표 녹색사회민주당 대표와 함께 창당 작업을 하고 있다. 장 대표는 민주투사로선 명성을 날렸지만 정치권에선 “하는 일마다 안 되는 외톨이”란 평을 듣는다. 1992년 민중당의 실패 이후 무지개연합 등 10여 개의 ‘나 홀로 정당’을 만들었지만 번번이 좌절한 탓이다. 여전히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그를 2040세대는 잘 모른다. 그의 정치적 파괴력은 제로에 가까운 게 현실이다.

 ‘국민생각’은 한나라당·민주통합당에선 받아주지 않는 정치낭인들이 모인 곳이란 인상을 주고 있다. 양당 공천에서 탈락하는 이들을 ‘이삭 줍기’로 거두는 게 총선 전략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첫선을 보인 이벤트가 한물간 전직 의원들의 회견이었으니 이런 비아냥이 나오는 것 아닐까. 그런 곳에서 “안철수 교수는 결국 우리한테로 올 것” 이라고 큰소리치고 있으니 허세만은 알아줘야 할 듯싶다. ‘국민생각’은 국민을 얘기하기에 앞서 자기네 처지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세상에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두려운 마음으로 성찰해야 한다. 꽃이 좋아야 나비도 모이고, 사랑도 받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