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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땡이 그림’ 331점 … 데이미언 허스트 지구촌 세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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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지난 12일 가고시안 갤러리 런던 지점에서 한 여성 관객이 데이미언 허스트의 ‘땡땡이 그림’을 감상하고 있다. 이 전시는 전세계 8개국 소재 가고시안 갤러리 11개 전 지점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런던 로이터=뉴시스]
‘’땡땡이 그림’을 들고 있는 허스트. [중앙포토]

‘현대미술의 악동’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47)의 블록버스터 쇼가 다시 시작됐다. 세계 굴지의 화랑 가고시안이 지구촌 전 지점에서 그의 개인전을 동시에 열고 있다. 전시작은 단 한 종류, 흰 캔버스에 색색의 원을 그려 넣은 경쾌한 추상화인 ‘스폿 페인팅(spot painting)’ 331점이다. 한때 국내에서도 유행했던 일명 ‘땡땡이 그림’(점화·點畵)이다.

가고시안 갤러리는 뉴욕·런던·파리·로마·홍콩 등 3대륙 8개 도시에 11개 지점을 두고 있다. 이 모든 곳에서 허스트의 ‘땡땡이’ 그림만 볼 수 있다. 이 초유의 전시는 4월 런던 테이트 모던 미술관으로 이어진다. 화랑은 11개 전시장을 모두 방문하는 이에게 허스트의 ‘땡땡이’ 판화를 증정하겠다는 이벤트를 내걸었고, 승자들도 속속 나오고 있다.

 화랑주 래리 가고시안(Larry Gago- sian·67)은 지난달 뉴욕타임스와 인터뷰에서 “이 그림은 이미 대중문화의 반열에 들었다. 광고에도, 옷에도, 차에서도 볼 수 있다. 우리 시각문화의 키워드가 됐다”며 “일반에 판매하는 그림은 전시작의 3분의 1도 안 된다”고 말했다. 그간의 경매 거래 기록에 따르면 ‘땡땡이’의 가격은 크기·상태 등에 따라 10만 달러(약 1억1000만원)부터 180만 달러(약 20억4000만원)까지다.

 ◆경매나, 전시나 블록버스터=허스트를 읽으면 세계 미술시장의 작동원리를 짐작할 수 있다. 화제만큼이나 비판도 많이 받았던 허스트의 ‘이벤트’는 2008년 말에도 있었다. 런던 소더비 경매에 신작 223점을 내놓아 2200억원어치를 팔았다. 단일 작가의 경매에서 피카소(1993년 경매)를 앞지르는 신기록을 세웠다. 당시 세계 금융위기가 무색해 보였다. 허스트의 컬렉터나 화랑 등은 경매가 실패할 경우 동반 손실을 입을까 두려워 적극 응찰할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도 돌았다. 말이 신작이지 ‘기존 작품을 재탕한 떨이 세일’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허스트는 “땡땡이나 죽은 동물 표본 설치 등의 작업은 그만두고 새로운 것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점상 ‘다신 없을 세일’이라며 컬렉터들이 달려들 법했다.

 그러나 지금, 그는 다시 ‘땡땡이’로 돌아왔다. 그는 뉴욕타임스에서 “각 지점마다 성격을 달리 했다. 뉴욕 메디슨점에는 초기작을 걸어 거장들(old masters) 같은 역사적 면모가 드러나도록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만든 점화 1500여 점 중 손수 그린 것은 단 5점. 그는 "내 그림을 판 돈으로 사람을 고용해 새 그림을 그리게 했다”라고 말했다. 한창 때는 100명이 넘는 조수가 있었다. 뒷면에 연도를 적고 사인하는 것만이 허스트의 역할이었다. 그는 ‘땡땡이’에 대해 “표면적으론 밝은 그림이다. 그러나 제대로 보기 시작하면 점, 점들이 이루는 격자 무늬 등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당혹스러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인가, 장사인가=현대 미술의 전형적 가치 올리기 수법인가, 또 한 번의 재탕 세일인가. 이미 서구화단에선 볼멘소리가 쏟아진다.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에 기고하는 미술평론가 리차드 도먼트는 “환상적으로 따분한 점화들이 전세계 가고시안 화랑을 가득 채우는 건, 대체 무슨 목적에 부응하는 거겠나”라고 불평했다.

 2008년 이래 잠잠했던 ‘미술계 제왕’이 이번 대형 전시로 재기할지도 관심사다. 서울옥션 최윤석 미술품경매팀장은 “허스트 점화의 가격은 한창 때보다 20∼30% 떨어져 있다. 이번 전시는 작품값에 호재가 될 것이다. 누구보다 허스트의 작품을 많이 팔았을 가고시안 갤러리가 고객들에게 애프터서비스 하는 건가”라고 꼬집었다. 갤러리 현대 박명자 회장은 “작가정신의 실종이다. 가령 이우환이 70년대 구작 ‘선으로부터’가 인기 있다고 해서 그걸 다시 그리나”라고 비판했다.

◆데이미언 허스트(1965~)=영국의 현대미술가. 영국의 미술전문지 ‘아트리뷰’ 선정 ‘세계 미술계 파워맨100’에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 1위에 올랐으나 2010년엔 53위, 2011년엔 64위로 떨어졌다.

◆래리 가고시안(1945~)=미국의 아트 딜러이자 가고시안 갤러리 체인의 소유주. 지난해 아트리뷰 선정 세계 미술계 최고의 파워맨에 꼽혔다. 앤디 워홀·제프 쿤스·쿠사마 야요이·에드워드 루샤·사이 톰블리·쩡판즈(曾梵志) 등 세계적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다룬다.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

- 미국 뉴욕 3개 지점. 2월 18일까지.

- 베벌리힐스 지점. 2월 10일까지.

- 영국 런던 2개 지점. 2월 18일까지.

- 프랑스 파리 지점. 2월 18일까지.

- 이탈리아 로마 지점. 3월 10일까지.

- 스위스 제네바 지점. 3월 17일까지.

- 그리스 아테네 지점. 3월 10일까지.

- 홍콩 지점. 2월 18일까지.

(장소 : 전세계 가고시안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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