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채권 큰손 ‘템플턴 글로벌채권그룹’ 하젠스탑 부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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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해 9월 28일, 국내 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7bp(0.07%포인트) 올랐다. 전날 미국계 ‘템플턴글로벌채권펀드’가 2000억원가량의 채권을 처분한 것으로 확인돼서다. 시장에서는 외국인 자금 이탈이 본격화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펀드평가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이 펀드의 총자산 규모는 567억 달러(약 64조5000억원)다. 펀드가 투자한 채권 가운데 한국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18.7%다. 이 펀드 운용을 맡은 한국 채권시장의 ‘큰손’ 마이클 하젠스탑(사진) 프랭클린템플턴 글로벌채권그룹 수석 부사장이 19일 본지에 기고문을 보내왔다. 그는 “아시아는 건재하다”고 자신했다. 다음은 기고문 요지.

유럽이 위기다. 이로 인해 최근 아시아 자산시장이 타격을 받고 있다. 유럽 문제가 이들 시장에 심각한 위험을 가져올 것이란 투자자의 우려를 반영한 결과다. 투자자의 우려가 맞는 것일까. 두 가지 시나리오로 분석해 볼 수 있다.

 먼저 유로존이 완전히 붕괴할 것이라는 가정이다.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도미노처럼 나타날 것이다. 유럽의 금융산업이 붕괴하고, 달러 다음으로 중요한 통화가 사라지면서 외환시장도 혼란에 빠질 것이다. 글로벌 경제는 리먼 사태 때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타격을 받을 것이다.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날까. 아니다. 강력한 재정동맹 수립을 위한 유럽의 움직임, 유럽중앙은행(ECB)과 각국 중앙은행의 이례적인 대규모 유동성 공급, ECB의 대규모 추가 자금 확보, 이탈리아의 재정적·구조적 개혁, 유로화가 독일을 포함한 유럽 통화동맹에서 제외될 경우 예상되는 엄청난 비용 등…. 이러한 일련의 대책을 보면 그 가능성은 극히 작다.

 반면 유럽 은행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과 유럽이 저조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꽤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고 아시아를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유럽은 글로벌 경제를 움직이는 핵심동력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경제체제를 유지해 왔다. 유럽의 경기 하락세가 장기화된다면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무역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2008년보다는 양호한 수준일 것이다.

 진짜 이슈는 자본시장이다. 유럽은행감독청(EBA)은 6월까지 자기자본비율을 9%까지 높이는 수준의 디레버리징을 은행에 요구할 것이다. 그렇지만 은행이 신규자본을 투입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해외자산을 포함해 기존 자산을 매각할 것이다. 그럼에도 아시아 시장이 받는 영향은 크지 않다. 대부분의 외국계 은행은 전액 출자된 자회사 형태로 아시아에 진출했다. 하여 자본을 쉽게 모회사로 이동시킬 수 없다. 이들 중 다수는 높은 수익성을 기록하고 있다. 자본확충을 위한 중요한 수입원인 셈이다. 일단 철수한 뒤 다시 진출하려는 계획도 불가능하다.

아시아 국가는 어려운 시기에 철수했던 외국기업이 다시 진출하려고 할 때 이를 환영하거나, 영업을 허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유럽계 은행이 매각을 하고 철수할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이 지역에 진출하려는 은행은 여전히 많다.

 아시아 국가의 펀더멘털도 긍정적이다. 상당한 외환을 비축했다. 부채 비율이 낮고, 지난 경기 침체기의 막바지에 선제적으로 금리를 올려 외부 환경 악화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많다. 중국·인도·인도네시아 등의 내수는 외부 수요 감소를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만한 수준이다. 한국은 부채 비율이 10년간 현저하게 줄었고, 외환보유액 또한 지난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

  유로존이 붕괴한다면 전 세계는 엄청난 혼란에 휩싸일 것이지만 그 가능성은 작다. 유럽 은행의 디레버리징과 유럽의 저조한 성장세로 인한 여파는 견딜 만한 수준이다. 전 세계 경제는 유럽의 수요와 관계없이 계속 전진하고 있다. 강력한 펀더멘털과 견실한 성장 가능성을 가진 아시아가 변화를 이끌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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