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종수의 세상읽기

올해 선거에서 이기는 확실한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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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종수
논설위원·경제연구소 부소장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정치인은 당선되는 것이 지상 목표이고, 정당은 집권하는 게 존재 이유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포퓰리즘 아니라 그보다 더한 일이라도 못할 게 없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표심을 잡아야 할 것 아닌가. 특히 요즘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2030세대의 표심을 잡는 일은 당장 석 달 앞으로 다가온 총선의 최대 관건이다. 그런데 여야를 막론하고 2030세대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중앙일보가 신년기획으로 내보낸 ‘내(내수)·일(일자리)’ 특집 기사에 따르면 2030세대의 최대 관심사는 일자리였다. 이들은 아예 대놓고 “내 일(my job)을 주는 후보에게 내 표를 주겠다”고 말한다. 선거의 승패를 좌우할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비전을 제시하는 후보와 정당을 지지하겠다고 하는데도 여야 정치권은 영 딴소리다. 새로 출범한 민주통합당의 지도부는 말할 것도 없고, 당을 쇄신하겠다는 한나라당의 비상대책위원회도 일자리를 만들어낼 획기적인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그저 판에 박은 듯이 온통 복지확대 타령뿐이다. 표심을 쥔 젊은이들이 총선과 대선 승리의 정답을 일러줬는데도 엉뚱한 대답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는 어디서 나오는가. 그동안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전략이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데 한계를 드러낸 만큼 앞으로는 내수·서비스업을 키워야 일자리가 생긴다. 사실 여기까지는 다 아는 이야기다. 정작 정치권이 풀어야 할 숙제는 내수·서비스업을 어떻게 키울 것이냐다. 그간 다 아는 해법을 실천하지 못한 이유는 내수·서비스업에 이익집단의 첨예한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고급 일자리가 줄줄이 걸려 있는 의료·관광·법률·교육서비스업마다 강력한 이익집단이 공고한 기득권의 아성을 쌓고 있다. 여기에 이념의 덧칠까지 칠해지고 나면 내수·서비스업 규제의 철옹성은 불가침의 성역이 되고 만다. 이런 분야의 규제를 풀어 젊은이들에게 번듯한 일자리를 만들어 주려는 시도는 이익집단의 기세에 눌린 장관과 국회의원들에 의해 번번이 무산됐다. 정치는 엇갈린 이해를 조정하고 절충하는 예술이다. 첨예한 이해가 걸린 내수·서비스업의 규제 개혁이야말로 고도의 정치력이 발휘되어야 할 곳이다. 더구나 올해 선거의 필승비법이 일자리 창출에 있음이 확인되지 않았던가.

 또 한 가지 이상한 일은 모두가 서민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서민들이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을 애써 비켜가고 있다는 것이다. 서민들의 최대 관심사가 뭐겠는가. 살림살이가 나아지는 것이다. 안정된 일자리에서 소득이 늘어나야 살림이 펴진다. 물론 물가가 낮아서 같은 수입이라도 씀씀이에 여유가 생기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우선 일자리가 있고 거기서 벌이가 늘어나는 게 먼저다. 물가만 잡는다고 살림이 펴지지는 않는다. 그러자면 경제가 전체적으로 활발하게 돌아가야 한다. 대기업 중심이니 양극화니 해도 그나마 경제가 성장해야 일자리도 생기고 소득도 늘어나는 것이다. 내수·서비스업을 키운다는 게 수출기업과 대기업의 발목을 잡자는 것은 아니다. 수출 대기업의 고용 창출효과가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이곳에서도 일자리는 만들어지고 있다. 다만 1970년대처럼 대규모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을 뿐 대기업은 여전히 중요한 고급 일자리의 원천이다. 과거보다 비중이 줄었을지는 몰라도 호황을 누리는 전자·자동차업계는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의 직원을 뽑을 계획이라고 한다. 완전히 ‘고용 없는 성장’은 없다. 성장을 하면 어쨌든 일자리는 늘어나고, 성장을 하지 않으면 일자리는 생기지 않는다. 내수·서비스업을 키우자는 것은 앞으로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 수 있도록 경제구조를 바꿔 나가자는 것이지, 수출 대기업이 만드는 일자리를 없애자는 뜻은 아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정치권에서는 입만 열면 서민생활 안정을 외치면서도 정작 서민들의 살림살이 개선에 가장 긴요한 경제 성장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돈이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생각하는지 온갖 ‘퍼주기 복지’ 약속만 무성할 뿐 성장을 통해 서민의 일자리를 늘려주겠다는 다짐은 없다. 양극화를 빌미로 재벌과 대기업을 때려잡겠다는 엄포만 횡행할 뿐 그들의 성장에 대한 기여와 그들이 만든 일자리는 무시한다. 이래서는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는커녕 더 팍팍해질 뿐이다. 재벌과 대기업 때리기로 ‘배 아픈 병’은 조금 덜 수 있을지 몰라도 서민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진 못한다.

 정치인들이 앞뒤가 맞지 않는 친서민정책을 내놓는 것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국정을 책임진 정부까지 잘못된 친서민정책의 대열에 끼는 것은 더욱 한심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에서 “새해 국정목표를 ‘서민생활 안정’에 뒀다”며 “어떤 일이 있어도 물가를 3%대 초반에서 잡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 “성장도 중요하지만 물가에 역점을 두겠다”고 했다. 서민생활 안정의 핵심이 물가 잡기라는 전제도 이상하지만 성장 대신 물가에 주력하겠다는 발상은 더욱 괴이하다. 교과서적으로는 경기가 부진하면 물가도 떨어지게 돼 있지만, 최근 우리나라의 경험을 보면 성장과 물가는 엇박자를 내왔다. 성장과 물가의 연관성이 크지 않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서민생활에 가장 긴요한 성장을 포기하면서까지 물가에 매달릴 이유가 없다. 물가만 잡는다고 서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질 게 없다면 오히려 성장을 통해 일자리와 소득을 늘리는 것이 더 나은 친서민대책이다. 더구나 하이퍼 인플레이션의 위험이 없다면 물가가 3% 초반이든 중반이든 뭐가 문제인가. 대통령의 ‘물가 올인’ 다짐은 성장을 포기한 반서민대책으로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