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실명·무기명 채권 없어서 못산다

중앙일보

입력

외환위기 직후 발행된 비실명.무기명 채권이 요즘 인기다.

상속.증여세가 면제되고 자금출처 조사도 받지 않아 거액 투자자들이 선호하기 때문이다.

특히 상속.증여 목적으로 구입할 경우 다른 채권보다 세후 수익률도 높아 채권시장에서 '묻지마 채권' 으로 불리며 마이너스 수익률까지 보이고 있다.

현재 유통 중인 비실명.무기명 채권은 고용안정채.중소기업구조조정채권.증권금융채 등 세가지. 1998년 10월 개인들의 거액 지하자금을 양성화해 공적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만기 5년짜리로 발행됐다.

이 가운데 거래가 가장 활발한 것은 증금채. 다른 채권들이 발행 당시 개인들에게 다 팔린 반면 증금채는 총 2조원 가운데 7천억원어치만 소화돼 투신사들이 나머지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증금채는 4일 현재 액면가 1만원짜리가 1만3천8백~1만4천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이 채권을 1만4천원에 산다면 만기인 2003년 10월 31일 표면금리 6.5%를 연복리로 따져 1만3천7백원을 받게 된다.

결국 3년 뒤 원금보다 3백원을 덜 받게돼 연간으론 1.62%, 3년간 총 5.14%를 손해본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증금채가 인기를 끄는 것은 상속.증여 수단으로 활용하면 세후 수익률에서 다른 채권을 앞서기 때문이다.

가령 현재 10억원을 투자한다면 증금채는 만기 때 9억4천8백55만원을 받을 수 있다.

이에 비해 만기가 같은 '국민주택 1종 98-10' 채권은 12억5백60만원을 받게 돼 증금채보다 2억5천7백5만원이나 많다.

하지만 상속이나 증여하는 경우 국민주택 1종은 3억2천2백24만원의 세금을 내야 하는 반면 증금채는 세금을 한 푼도 물지 않아 오히려 6천5백19만원의 이득을 보게 된다. 상속.증여금액이 커질수록 절세액은 훨씬 많아진다.

동양증권 노평식 채권운용팀 차장은 "처음 발행됐을 때는 자금출처 조사가 정말 면제될 지 의아해 하는 분위기여서 개인들이 매입을 주저했다" 며 "지난해 말부터 수요가 늘면서 지난 4월 1만6천원까지 폭등하기도 했다" 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투신사들은 올해 대부분의 보유채권을 내다 팔아 1천억원 이상의 차익을 올렸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편 같은 시기에 발행된 고용안정채와 중소기업구조조정채는 아예 매물부족으로 거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두 채권은 98년 10월 각각 1조6천억원과 1조원 규모로 발행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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