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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건강은 나이순이 아니잖아요 ③ 댄스스포츠로 건강 되찾은 신상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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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양복지관 ‘스포츠댄스예술단’의 최고령 단원 신상규씨가 자이브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김수정 인턴기자]

한국전쟁 휴전협정을 한 달여 앞둔 1953년 6월 10일. 신상규(당시 22세) 중대장은 인민군의 폭격을 받아 정신을 잃었다. 깨어 보니 함께 있던 300여 명의 전우는 거의 모두 숨진 상태였다. 다행히 신 중대장은 기적적으로 목숨은 건졌지만 온몸에 포탄의 흔적이 남았다. 머리에 박힌 포탄 파편은 끝내 빼내지 못했다. 전쟁의 상흔(傷痕)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다.

40대 후반부터는 당뇨병이 그를 괴롭혔다. 5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에는 집에 틀어박혀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건강은 더욱 악화됐다. 이를 보다 못한 자녀들이 운동을 권했다. 그는 그렇게 댄스스포츠를 만났다. 2009년의 일이다.

작년 전국 시니어 댄스 페스티벌 대상

“락앤 퀵아퀵 퀵아퀵, 찍고 다이아몬드 두 번~” 경기도 고양시에 위치한 덕양노인종합복지관 강당. 흥겨운 음악소리와 함께 힘찬 구호가 울려 퍼졌다. 20여 명의 어르신이 일사불란하게 자이브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 화려한 분홍색 무대복장으로 유독 눈에 띄는 이가 덕양노인종합복지관 ‘스포츠댄스예술단’의 최고령 단원 신상규(81·남·경기도 고양시)씨다.

그가 입고 있는 무대복은 각종 노인댄스대회에서 수상의 감격을 함께 나눴던 의미 있는 옷이다. 그가 소속한 예술단은 지난해 11월 전국 260개 복지관 소속 2000여 명이 참가한 ‘4회 토토시니어 페스티벌’에서도 대상을 차지했다. 단원 스무 명의 평균 나이는 67세. 80대는 신씨가 유일하다.

그는 예술단원 중에서도 연습벌레로 통한다. 댄스스포츠 수업은 수요일 하루지만 그는 매일 나와 자율연습에 참석한다.

신씨가 댄스스포츠를 시작한 것은 자식의 적극적인 권유 때문이었다. 오랜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텅 빈 집에 홀로 계시는 아버지 걱정에 자녀들이 가볍게 운동이라도 하시라고 복지관을 추천했다. 그때 그의 눈길을 끈 것은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댄스스포츠 프로그램이었다.

그는 “이 몸으로 쫓아갈 수 있을까 걱정도 했지만, 문득 태권도·유도 같은 각종 운동을 섭렵했던 젊은 시절이 떠올랐다”고 했다. 신씨는 용기를 내어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춤 배운 후 혈당 떨어지고 근력 좋아져

댄스스포츠는 신통할 정도로 그에게 건강과 젊음을 ‘선물’했다.

신씨의 키는 171㎝, 몸무게는 65㎏. 약간 배가 나왔을 뿐 몸무게는 정상이다. 그는 “운동을 시작한 후로는 신기하게도 혈당이 정상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현재 신씨는 건강한 성인의 공복혈당 범위인 90㎎/㎗을 유지하고 있다. 혈압은 이완기 70, 수축기 120㎜/Hg으로 역시 정상치 범위다.

체력도 강해졌다. 예전엔 10분 거리를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춤연습 시간 외에도 따로 1시간씩 걸을 정도로 건강해졌다. 실제로 미국심장학회운동위원회에서는 댄스스포츠를 근력 발달 및 심장·폐 등에 좋은 영향을 주는 운동요법으로 권장하고 있다. 특히 운동부족으로 생길 수 있는 고혈압· 당뇨병 등의 성인병 치료에는 ‘보약’보다 탁월한 효능을 발휘한다.

댄스 실력이 늘수록 집중력도 덩달아 높아졌다. 신씨가 소화하는 춤의 종류는 자이브·차차·룸바·탱고·왈츠 등 10여 가지에 달한다. 그는 “그래도 나이를 속일 수 없는지, 수업 진도 따라가는 게 조금은 버겁다”며 “수업 시간 내내 스텝외우기에 신경을 쓰다 보니, 집중력이 높아지고 건망증도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파트너 배려 위해 좋아하던 술도 끊어

댄스스포츠를 통해 얻은 긍정적인 또 다른 변화는 술을 끊은 것이다. 신씨는 “파트너랑 손잡고 연습하는데 입에서 술 냄새가 풍기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매일 사람들과 마주보고 동작을 맞춰보면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책임감도 커졌다는 것이다.

신씨는 대화 도중 돌연 “뒷모습만 보면 나도 20대 청년 같지 않을까”라며 자신의 뒤태를 보여줬다.

같은 연령대 노인에 비하면 신씨의 등은 매우 곧다. 신씨는 허리와 어깨가 구부정하고 다리까지 저는 동년배 노인을 볼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신씨는 또래 친구들에게 댄스스포츠를 적극 추천한다.

처음에는 ‘나이도 많은데 주책’이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친구들이 음악에 맞춰 직접 춤을 추다 보면 금세 매력에 빠져든다고 했다. 그렇게 끌어들인 친구가 10명은 족히 된다.

신씨는 몇 년 전 자신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 이들만 보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즐겁고 신나게 춤추세요. 그러면 새로운 삶이 펼쳐진답니다”.

오경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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