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대표 가슴 로고 값은 1200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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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주영

8년간 1200억원. 대한민국 스포츠 역사에서 가장 액수가 큰 후원 계약이 성사됐다. 축구협회 마케팅의 승리일까. 나이키의 도박일까. 대한축구협회(회장 조중연)는 13일 나이키 코리아와 8년간 총액 1200억원(현금 600억원+물품 600억원)을 받는 축구 국가대표팀 후원 재계약을 맺었다. 축구협회는 올해부터 2019년까지 매년 현금 75억원과 축구용품 75억원어치를 지원받는다. 나이키는 이번 계약으로 1996년부터 24년째 축구협회와 독점적인 후원 관계를 이어가게 됐다.

 ◆왜 8년 장기계약을 했나=그동안 축구협회와 나이키는 2년-5년-5년-4년 단위로 계약해 왔다. 축구협회 이해두 사업국장은 “용품업체와의 장기계약은 세계적인 추세다. 일본도 아디다스와 8년 계약을 한 것으로 안다”며 “재정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게 협회 운영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나이키도 지난해 프랑스 국가대표팀과 8년 계약을 했다.

 축구협회로서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과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 진출 여부에 상관없이 꾸준한 수입원을 확보했다. 나이키도 장기적이고 다양한 마케팅을 계획할 수 있고, 잦은 재계약에 대한 부담을 덜게 됐다.

 그 결과 국내 스포츠단체의 후원 계약 중 최초로 1000억원이 넘는 ‘잭팟’이 터졌다. 앞서 축구협회는 나이키와 2008~2011년 4년간 총액 490억원(현금 250억원+물품 240억원)의 계약이 종료됐다. 계약기간을 두 배로 늘리고 후원금도 종전보다 200억원 이상 늘어난 셈이다. 현금 지원도 매년 62억5000만원에서 12억5000만원이 증가한 75억원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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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광래 감독 경질과 관계 있나=지난해 12월 조광래 전 대표팀 감독 경질 과정에서 ‘스폰서 외압’ 파문이 있었다. 지난해 9월 초대형 계약을 마무리하고 발표만 남겨놓은 시점에서 조광래 감독이 이끄는 A대표팀이 잇따라 졸전을 펼친 것이다. 다음달 29일 쿠웨이트에 지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은 물 건너 가게 된다. 나이키로서는 이만저만한 손해가 아니다. 실제로 나이키 본사에서는 상당히 당황했다고 한다.

 하지만 축구협회 관계자는 “나이키와의 재계약이 조광래 감독 경질에 영향을 미쳤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다. 나이키는 비즈니스 측면에서 브랜드 노출 등 후원업체의 권리만을 확실하게 요구했다”고 말했다.

 나이키 관계자는 “선수와 계약할 때 부상의 위험이 항상 있는 것처럼 어떤 계약이든 기본적인 리스크는 있기 마련”이라며 “한두 경기 성적을 놓고 일희일비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키가 한국에서 1~2년 활동한 것도 아니고 축구협회와 협력관계라는 의식이 강하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현재 한국 대표팀의 상황을 놓고 보면 나이키로서는 상당한 도박을 한 셈이 됐다.

 축구협회와 나이키가 재계약을 하는 과정에서 암초가 된 부분이 또 있었다. 축구협회는 현금 지원을 최대한 많이 요구했고, 나이키는 용품도 현금과 마찬가지라며 밀고 당겼다. 나이키는 선수 개개인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사용하는 장비는 모두 나이키 브랜드를 요구했지만, 축구협회는 경기력 향상을 위해 축구화의 경우 개인이 선호하는 브랜드를 착용하게 해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1000억원 목표’ 초과 달성=축구협회 사업국은 나이키와의 재계약에 앞서 ‘1000억원의 장기 계약’을 목표로 했다. 나이키와 계약을 맺은 프랑스 등 외국 사례 등을 전방위로 조사해 협상에 적극 활용했다. 축구협회 관계자는 “현재 대한축구협회 12개 후원사 중 메인 스폰서인 나이키와의 재계약에 공을 가장 많이 들였다. 나이키와 좋은 계약을 맺으면 나머지 후원사들과의 계약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목표였던 1000억원을 넘어 1200억원의 대박을 터뜨린 축구협회는 표정관리를 하고 있다.

한용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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