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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의 수모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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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3호 29면

인조 미라는 영생 소망의 표현이다. 북한 당국이 김일성 주석에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미라로 만들어 금수산기념궁전에 보존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20세기 이후 공산권인 소련이 블라디미르 레닌을, 중국이 마오쩌둥(毛澤東)을, 베트남이 호찌민을 각각 미라로 만들었다. 하지만 건국지도자가 아닌 아들까지 미라로 만드는 일은 처음이다. 사실 이들이 바란 것은 육신보다 권력의 영생일 것이다.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고대 이집트에서 지상에 피라미드를 세우거나 땅속에 지하궁전을 만들어 부장품으로 가득 채운 것은 아무래도 미라 보관용보다 권력 과시용 성격이 강해 보인다. 물론 그들의 생전 권력이 사후 자신의 미라조차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다. 수많은 파라오의 무덤 가운데 미라가 제대로 발견된 것은 투탕카멘이 거의 유일하다. 나머지는 대부분 도굴됐다. 그런데도 카이로의 이집트박물관에 가보면 구약성서에도 나오는 람세스 2세와 전쟁왕 투트모시스 1세 등 수많은 유명 파라오의 미라가 특별전시관에서 별도 요금을 낸 손님들을 맞고 있다.

이 파라오 미라들은 1881년 한꺼번에 발견됐다. 이집트 중부 룩소르의 나일강 서안 지역 ‘왕가의 계곡’에 있는 기원전 10세기 고대 사제 피네젬 2세의 무덤에서 나왔다. 주변에 사는 압델 라수스 가문이 끊임없이 고대 부장품을 가져와서 파는 걸 이상하게 생각한 당국이 이들을 신문한 결과 이곳에 50여 개의 미라가 고대부터 보관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미라를 싼 아마포에 기록된 고대 신성문자를 해독한 결과 이 미라들은 파라오 10여 명과 왕비, 왕족 및 고위 사제들의 것으로 밝혀졌다. 추가 해독 결과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기원전 10세기 왕조가 쇠퇴기에 이르러 도굴이 극성을 부리고 정부도 이를 제대로 막을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아예 관리가 쉽도록 한곳에 모아 보관했다는 것이다. 사제들은 무덤 속 석관을 열고 미라를 꺼내 새 아마포에 싸고 경위를 써넣은 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허름한 무덤 속으로 옮긴 것이다. 이미 3000년 전부터 파라오들의 미라는 영생은커녕 도굴을 피하기에 바빠 휴식도 영면도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수천 년이 흐른 뒤 이 지역에 살던 압델 라수스 집안의 누군가가 우연히 미라로 가득 찬 무덤을 발견했다. 이들은 당국의 눈을 피해 부장품을 조금씩 내다 파는 걸 대대로 가업으로 삼았다. 하지만 19세기 서양인들이 몰려와 값을 후하게 쳐주자 아예 미라까지 내다 팔려다 덜미가 잡힌 것이다. 이집트 당국은 미라를 가문의 재산으로 여기는 주민들의 저항을 우려해 모든 미라와 부장품을 48시간 안에 모두 증기선에 실어 카이로로 옮겼다. 무덤은 다시 밀봉됐다.

과거 권력자의 미라들은 이렇게 해서 이집트박물관에 모이게 됐다. 이 박물관이 민주화 성지가 된 타흐리르 광장의 한편에 있다는 것은 무척 시사적이다. 누구든 육신과 권력의 영생이라는 헛된 꿈의 흔적을 보려면 이곳을 찾으면 된다. 미라와 타흐리르가 나란히 방문객을 맞아줄 것이다. 미라는 육신의 영생도, 권력의 영속도 보장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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