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가을, 길 떠나는 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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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대미를 장식한 태풍 '프라피룬'이 한바탕 비바람을 몰고 오더니 끝날 것 같지 않은 여름도 어느새 꼬리를 감추며 9월을 맞았네요.

이른 가을, 땀없이 걸을 수 있는 기나긴 산책은 어떨지. 가을로 향하는 문턱인 이번주엔 나를 찾아 떠나는 로드 무비를 소개합니다. 길에서 깨닫는 삶의 묘미를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웨스턴 Western ★★★☆

감독 : 마뉴엘 쁘와리에 / 주연 : 세르지 로페즈, 사샤 보르도 / 출시 : 1998년 5월 1일

해 뜨는 반대방향의 의미를 가진 제목처럼 사회로부터 또 여자로부터 소외된 두 남자의 여행기를 담고 있다. 악연으로 만난 두 사람이 진정한 우정을 나누게 되고, 각자 새로운 희망을 찾게 된다. 1997년 칸느에서는 이 영화를 두고 "가장 따뜻한 영화"라고 했다.

플레이보이 기질이 다분한 파코는 훤칠한 외모에 걸맞게 여자들에게 인기만점이다. 신발 세일즈맨으로 일하는 그는 출근길에 만난 미모의 연인을 태우기 위해 차를 멈춘다. 그러나 차에 올라탄 사람은 낯모르는 사내, 니노. 가뜩이나 기분 상한 파코는 니노에게 차까지 도둑맞는다. 우여곡절 끝에 회사에 당도하지만 차와 함께 신상품 샘플을 몽땅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만다. 다행히 니노를 찾게 된 파코는 그를 흠씬 혼내주지만, 그의 딱한 속사정을 듣고 측은한 마음을 갖는다.

아이다호 My Own Private Idaho ★★★☆

감독 : 구스 반 산트 / 주연 : 리버 피닉스, 키아누 리브스 / 출시 : 1992년 5월

어머니와 고향에 대한 조각난 그리움을 가진 젊은이가 자신의 고향을 찾아 떠나지만, 끝내 남는 건 철저한 고독뿐이다. 고인이 된 리버 피닉스는 이 영화로 베니스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강도 높은 동성애 장면으로 삭제 수입된 문제작이기도 하다.

동성애자이자 남창으로 살아가는 마이크과 그의 애인인 스코트는 마이크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마이크는 흥분만 하면 쓰러져 깊은 잠에 빠지는 기면 발작증이라는 오랜 지병을 갖고 있다. 스코트는 마이크와는 달리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다. 오로지 반항심으로 남창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것. 여행 도중 스코트는 여자 애인을 만나 떠나 버리고 마이크는 낯선 길바닥에 버려진다.

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

감독 : 짐 자무쉬 / 주연 : 에스페르 발린트, 존 루리, 리차드 에드슨 / 출시 : 1996년 1월 1일

수많은 국제 영화제에서 걸작으로 평가된 짐 자무쉬 작품이다. 강렬한 흑백 대비, 과감한 시간 생략, 카메라의 절제된 움직임 등 독립영화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참신한 매력을 한껏 담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깨고 미국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낯설지만' 매혹적으로 보여주는 로드 무비다.

뉴욕의 빈민가, 헝가리 출신의 히피족 윌리와 그의 단짝 에디, 그리고 새로운 삶을 찾아 미국이라는 신세계를 방문한 에바가 만난다.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윌리와 에바 사이에는 차츰 미묘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지만 에바는 곧 클리블랜드의 숙모댁으로 떠난다. 일년 후 600불이라는 거금이 생긴 윌리와 에디는 에바를 찾아 클리블랜드로 향한다.

파리 텍사스 Paris, Texas ★★★☆

감독 : 빔 벤더스 / 주연 : 해리 딘 스탠톤, 나스타샤 킨스키, 딘 스톡웰

잃어버린 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역설적이게도 또 다른 상실감일 것이다. 헤어진 아내를 찾아 떠난 주인공은 결국 아내를 만나지만, 자신의 뇌리에 남아있던 그녀에 대한 순수마저 강탈당한다. 〈베를린 천사의 시〉의 빔 벤더스 감독 작품으로 1984년 칸느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기억상실로 실어증에 걸린 트래비스. 그에게는 아무 것도 남은 게 없다. 동생의 도움 등 주위의 배려로 인해 간신히 정신을 차린 그는 4년만에 아들을 만나고 그와 함께 떠나버린 아내를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녀는 환락가 쇼걸로 생활하고 있었던 것. 아들은 어머니와 극적인 상봉을 하지만 트래비스는 아내와의 거리감을 견디지 못해 어디론가 사라진다.

레인맨 Rain Man ★★★☆

감독 : 배리 레빈슨 / 주연 : 톰 크루즈, 더스틴 호프만, 발레리아 골리노 / 출시 : 1993년 3월

더스틴 호프만의 사실감 넘치는 자폐 연기로 유명한 작품이다. 독립영화 영역을 넘본 헐리우드 작품이라는 비난의 시각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좋은 영화로 평가된다. 스토리 텔링에 능한 배리 레빈슨의 맛깔스런 연출이 영화를 재미있게 해준다.

거친 성격의 찰리는 어릴 적 아버지와의 불화로 인해 가출했다. 자동차 중개상을 하며 살아가던 어느 날 자폐증 환자인 형 레이먼드가 거액의 유산을 상속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찰리는 그 유산을 가로채려는 마음으로 형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형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여러 가지 일을 겪은 찰리는 긴 여행 끝에 끈끈한 형제애를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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