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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아들, 새아빠 김 회장 조언따라 식품공학 전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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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매 대표에겐 1남1녀가 있다. 첫 결혼에서 얻은 자녀다. 최 대표가 김정문 회장과 재혼을 결심했을 때 최 대표의 친정어머니가 말린 이유는 “아이들을 생각하라”였다. “니 인생은 그렇다 치고, 아이들이 어떻게 이해하겠느냐”며 반대했다.

 다행히도 어머니의 걱정은 기우였다. ‘살아 있는 도서관’이었던 새아빠, 김 회장을 아이들은 잘 따랐다. “이건 왜 이래, 아빠”하며 졸졸 쫓아다니며 물었고, 모르는 게 없는 아빠를 아이들은 자랑스러워 했다. 아이들 견문을 넓혀주려 국내외로 가족여행도 많이 다녔다.

 올해 스물다섯 살인 아들은 현재 서울대 식품공학과에 다니고 있다. 김 회장이 작고하고 며칠 뒤 합격 발표가 나 가족들이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려선 변호사가 꿈이었던 아들이 식품공학을 전공하게 된 데는 김 회장의 영향이 컸다. “식품공학을 공부한 뒤 MBA를 하라”는 조언에 따랐던 것이다.

김정문알로에 제주농장에서 재배한 알로에를 안고 있는 최 대표. 2007년 3월 찍은 사진이다.

아들 공부시킨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려서부터 두뇌 발달에 신경을 썼다”고 했다. 반드시 책을 읽혀 재웠고, 피아노와 영어도 일찍부터 가르쳤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선 줄곧 올백을 받아 왔다. ‘우리 아들 공부 잘하네’ 생각할 만했다. 그런데 중학교 입학해 반편성 고사를 봤는데, 결과가 전교 57등이었다. 최 대표는 “충격이었다”고 했다. “뭐든 못하는 꼴을 못 보는” 완벽주의 성향이 발동했다. 그날부터 아이를 붙잡고 공부를 시켰다. 밤 12시까지 예습·복습을 하게 했고, 아들이 자는 걸 보고서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게 한 학기를 보내고 1학년 1학기말 시험을 볼 때였다.

 “한문 시험을 본 날, 아이 시험지를 보며 점수를 확인하는데 갑자기 죽을 것 같더라고요. 침대에 누웠더니 침대가 한 바퀴 휙 도는 것 같았어요.”

 결국 119 구급차까치 출동했다. 최 대표는 그때 유언까지 했다고 한다. 병명은 ‘공황장애’였다. 이렇게 목숨 걸고 공부시킨 엄마 덕에 아들은 전교 1등을 했다. 최 대표는 “아이가 그때 공부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 후 고비 없이 대입까지 잘 치렀다.

 현재 미국에 유학 중인 딸(19)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키웠다. 조기 교육을 하나도 안 시켰다고 했다. 대신 딸의 눈높이에 맞춰 대화를 많이 하며 키웠고, 친구 같은 모녀 사이로 지낸다. 최 대표는 “나를 불편해하거나, 어른이라는 장벽을 안 갖도록 신경 썼다”고 말했다. 공부는 오빠보다 못한 모양이다. 최 대표는 “공부 잘하려면 조기교육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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