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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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홍콩영화하면 현란한 액션이 난무했던 쿵후영화를 습관적으로 떠올리고 기억한다.

하지만 습관적인 액션의 반복은 신비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3류영화의 상징으로 자리잡아 버렸고, 대중들에게서도 서서히 외면받기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홍콩영화의 잠재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왕가위를 위시한 몇몇 작가주의 영화가 던져주는 매혹적인 유혹 때문일 것이다.

특히 왕가위는 그 작가주의의 반열에 가장 선명한 위치를 남긴 선두격인 인물로 〈열혈남아〉〈아비정전〉〈동사서독〉〈타락천사〉등으로 이어지는 거침없는 행보를 멈추지 않고 있다.

마치 컬트영화같은 숭배를 받던 저주받은 작품〈아비정전〉이후 비로소 대중들에게 왕가위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영화가 바로〈중경삼림〉이다.

이 영화속에서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사랑때문에 고민하고 상처받기 쉬운 감성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왕가위는 이런 인물들을 버림받은 군상들로 처리하기보다 자신의 일상에서 소박한 감동을 느낄줄 아는 인간미를 부여하고 애정을 아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전반에는 묘한 강박관념이 감싸고 있음은 주시할 일이다.

금성무가 유효기간이 지난 파인애플 통조림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하는 것은, 시계의 정면 클로즈업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홍콩반환의 강박관념에 다름없는 것이다. (사실 이 강박관념은 당시 왕가위의 영화에 공통적으로 해당되었던 것이다)

여전히 스텝프린팅이라는 왕가위의 전매특허격인 촬영기술이 어김없이 등장하면서 영화전반의 미학을 담당하는데 〈중경삼림〉에는 음악에서 크게 일조하는 바 있다.

특히 이 영화의 후반부(왕정문과 양조위가 등장하는)에 해당하는 에피소드에는 음악의 역할이 절대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왕가위가 자신의 컬렉션으로 내세우는 음악들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영화에 삽입된 마마스&파파스가 부르는 올드팝송 'California Dreaming'에서 드러난다.

습관적인 팝송의 삽입이 영화의 모든 이미지를 망친다는 것을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아왔으나 왕가위의 셀렉션은 영화의 코드와 완벽하게 동화된다는 점에서 일단 틀리다.

마지막을 담당하는 것은〈중경삼림〉의 강박관념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 보일 것 같은 왕정문의 한곡 '몽중인'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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