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 부산, 까짓것 걸어가는 거야 … 유쾌한 열아홉 청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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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해 11월 24일 경기도 평택에서 충남 천안으로 가는 길에서 송준희(19)군이 길을 걷다 흥에 겨워 뛰고 있다.

지난해 12월 5일 대구 산격동 경북대 정문 앞. 흰 도포에 갓을 쓴 한 청년이 태블릿PC를 들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잠시 후 한복 차림의 여성이 다가와 청년과 인사를 나눴다. 여성은 준비해 온 손난로와 목도리를 꺼내 청년에게 건넸다. 행인들은 “웬 갓 쓴 선비냐”며 휴대전화로 사진을 찍어댔다. 대구공항까지 5㎞를 함께 걸은 이 여성은 청년에게 “부산까지 잘 완주하라”며 작별인사를 했다.

갓 쓰고 한복 입고 걸은 송준희

 인터넷에서 ‘갓톡남(갓을 쓰고 포털사이트 게시판 ‘톡톡’에 글 쓰는 남자)’이란 별명으로 주목을 받은 송준희(19)군. 송군은 지난해 11월 21일부터 12월 12일까지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보로 490㎞를 걸었다. 비용 50만원은 용돈을 모아 마련했고, 여행정보는 인터넷 카페에서 얻었다. 갓과 짚신은 조선시대의 과거 시험을 보러 가던 옛 선비들을 패러디한 것이라고 한다. 송군은 “20대를 앞두고 ‘준비운동’이란 생각으로 여행을 계획했다”며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내겠다는 각오로 영하 10도의 추위에도 한복을 입고 다녔다”고 말했다. 그는 틀에 짜인 교육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부산 낙동고 2학년 때 중퇴를 했다. 대입 검정고시를 거쳐 지난해 수능을 치렀다. 그의 꿈은 ‘제3세계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1970~80년대 무전여행을 하던 젊은이들과 달리 요즘 젊은 세대의 여행은 소통을 지향한다. 인터넷으로 시시각각 자신의 여정을 알리고 네티즌들에게서 도움을 받는다. 송군은 매일 인터넷 게시판에 ‘오늘은 경북 칠곡에서 대구 시청까지 걸어요’라고 상세한 일정을 올렸다. 네티즌들은 게시판이나 송군의 미니홈피에 몇 시까지 어디에서 만나자는 글을 남겼다. 이들은 송군에게 음식을 사주는가 하면 목도리·핫팩·비상약품 등을 선물했다. 이렇게 여행기간 동안 만난 사람은 모두 50여 명이나 된다. 평택~송탄, 왜관~대구 등에서 10여 명의 네티즌이 송군과 함께 걸었다.

8일째 걷고 있는 김정우

 부산 브니엘고 김정우(19)군은 송군 여행기를 보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걷고 있다. 지난해 수능을 치르고 대학 입학을 준비 중인 김군은 “준희의 글을 보고 도전하겠다는 용기가 났다”고 말했다. 김군의 도보 여행은 1월 1일 시작됐다. 네티즌들은 “갓톡남이 돌아왔다”며 반기고 있다. 갓은 쓰지 않았지만 고무신에 한복을 입은 모습은 송군과 같다. 8일 낮 추풍령 고개를 넘은 김군은 이날 저녁 충북 영동에 여장을 풀었다. 그는 “여행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이렇게 즐거운 줄 몰랐다”고 말했다. 경북 영천 부근에서 눈길에 미끄러진 승합차에 치일 뻔하기도 했지만 김군의 목소리에선 힘이 느껴졌다.

송군과 김군이 지금까지 올린 26개의 여행기는 편당 적게는 5만여 명, 많게는 30만 명 이상이 읽었다. 여행기마다 댓글도 수백 개씩 달렸다. 두 사람의 ‘신선한 도전’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여름방학에 무전여행을 하겠다” “다음 여행에 동참하겠다”며 두 사람에게 여행 방법을 묻는 이들도 있다.

 두 사람의 도전은 길을 걸으며 성장해 간다는 점에서 ‘로드무비’에 가깝다. 송군은 “어른들은 우리를 나약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피는 뜨겁다”며 “내가 걷던 길을 정우가 걷고, 그 길을 또 다른 친구가 걸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군도 “우리만의 방식으로 세파에 맞서고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원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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