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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수 먹이고 사료는 손으로 … 구제역 이겨낸 ‘명품 소 희망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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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강원도 화천 대성목장의 조세환(52) 대표가 소를 쓰다듬고 있다. 지난해 1월 구제역 때문에 키우던 1150여마리를 전부 묻은 뒤 새로 얻은 소다. 그는 “부지런히 뛰어 소 2000마리 목장을 일구겠다”고 다짐했다.

구제역이 한반도를 뒤덮은 지난해 1월 12일. 그는 송아지에게 젖을 물린 어미 한우에게 안락사 주사를 놓았다. 다른 소는 1~2분 만에 쓰러졌건만, 어미 소는 비틀거리면서도 5분을 넘게 버텼다. 마침내 쓰러져 눈을 감은 건 새끼가 입을 뗀 뒤였다. 어미야 몰랐겠지만 송아지도 살처분 대상이었다. 그렇게 키우던 한우 1152 마리를 한 마리도 남김없이 묻어야 했다.

 1년이 지난 지금, 목장은 다시 일어서고 있다. 새로 소를 사들여 키워서는 신세계백화점에서 팔 프리미엄 한우 세트를 만들고 있다.

 강원도 화천 화악산 중턱에서 ‘대성목장’을 운영하는 조세환(52) 대표. 그는 고교를 졸업한 1980년 서울 마장동에서 작은 쇠고기 도매상을 하며 소와 인연을 맺었다. 조 대표는 “돈을 벌어야겠는데, 마침 살던 동네가 도축장이 있던 마장동이어서 고기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주말엔 경기·충청의 농가를 돌며 소를 골라서는 도축장에 맡겼다가 정육점과 식당에 넘겼다. 때론 선지를 떼어다 해장국집에 팔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사업을 계속하던 87년, 신세계백화점에서 연락이 왔다. 쇠고기를 대달라는 것이었다. “마장동에 젊은 친구가 있는데, 고기가 좋고 구하기 힘든 부위도 잘 가져다 준다”는 얘길 들었다고 했다.

 거래는 3년 넘게 이어졌다. 그러면서 신세계 구매 담당자와 가까운 사이가 됐다. 조 대표는 그에게 간간이 “목장을 세워 일본 와규(和牛) 못지않은 소를 키워내 보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저 지나가는 말로 던진 것이었는데, 그게 인생을 바꾸게 됐다. 신세계 내부적으로 ‘믿을 수 있는 소를 직접 키워 판다’는 방침을 정했고, 그 소를 키울 사람으로 조 대표를 점찍은 것. 신세계 스스로 4억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흔쾌히 받아들인 뒤 ‘일본 배우기’부터 시작했다. 30번 넘게 일본을 다녀오며 소 혈통 관리부터 쇠고기 포장·운송법까지를 일일이 배웠다. 축사 크기도 꼼꼼히 측정해 기록했다. 그는 “일본 목장이 웬간해서는 정보를 알려주지 않기에 사람을 사귀어 가면서 조금씩 노하우를 습득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또 “소를 먹이는 사료를 몰래 만져보고 손끝 감각으로 배합을 추론해 보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고 덧붙였다.

 목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뒤엔 딱 두 가지에 집중했다. ‘환경’ ‘정성’이었다. 소는 청정 지역에서 방목을 하고, 270m 깊이에서 깨끗한 지하수를 길어 먹였다. 사료는 한 마리씩 사람이 손으로 먹였다. 한편으로 고기 질이 나쁜 소는 도태시키는 식으로 혈통을 관리했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서는 최고 등급인 1++ 쇠고기가 다른 목장보다 50% 많이 나오게 됐다. 구제역이 휩쓸기 전엔 100g당 2만원짜리 명품 등심을 생산하는 정도가 됐다.

 하지만 구제역은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조씨는 “20여 년 쌓아온 정성이 물거품이 된 순간이었다. 지옥 같았다”고 표현했다. 하지만 주저앉지는 않았다. 다시 소를 키워도 좋다는 허가를 얻기 위해 소독과 청소를 시작했다. 무려 7개월간 축사를 닦고 또 닦은 끝에 위생검사에 합격했다.

 소들을 살처분하면서 받은 보상금을 갖고 조 대표가 직접 전국의 우시장을 돌며 혈통이 좋아보이는 소 460마리를 골랐다. 신세계백화점은 오랜 파트너와 다시 손을 잡았다. 올 설에 판매할 명품 한우 세트 중 일부를 대성목장에 맡긴 것. 5.2㎏에 90만원짜리 프리미엄 제품이다. 최근 소값이 뚝 떨어졌지만, 대성목장은 그 영향권에서 비껴갔다. 워낙 품질 좋은 소를 키우는 데다 신세계백화점이라는 든든한 파트너가 제값을 쳐줬기 때문이다. 오히려 송아지 값이 떨어진 기회를 잡아 올해 안에 다시 1200마리 목장을 만들어 보겠다는 게 조 대표의 목표다.

 그는 “최근의 소값 파동은 소를 너무 많이 키워 생긴 것으로 일부를 폐기처분하지 않고는 짧은 시간 안에 해결할 수 없다”며 “앞으로 이런 일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정부가 소 사육 마릿수 변화를 주의 깊게 관측하면서 이상 신호가 엿보이면 바로 선제적인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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