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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이 사람] 천안 북일고 야구부 이정훈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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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허리 펴야지. 어깨에 힘 빼고!” 3일 오후 3시 천안 북일고등학교 야구장. 전술지시를 하는 이정훈(49·아래 사진)감독의 불호령에 야구부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하얀 눈발이 날리고 체감온도는 영하 20도를 웃돌았지만 이 감독과 선수들의 열기는 뜨거웠다. 특히 이 감독은 청소년 국가대표를 이끌고 아시아시리즈를 참가한지 불과 열흘도 안됐지만 북일고 선수들을 대하는 그의 ‘열정’은 뜨겁게 불타고 있었다.

목표는 2013년 세계대회 우승

지난해 12월 이정훈 감독이 이끄는 한국 청소년대표팀은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 고교야구 최강전에서 3위에 머물렀다. 4개 팀이 참가한 가운데 3위를 했으니 결과만 놓고 보면 그다지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3일 한국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 감독이 18명 엔트리 전원을 2학년 구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패한 대회도 아니다. 내년 8월 국내에서 개최되는 ‘제25회 세계청소년 야구선수권대회에서 좋은 성적이 기대되는 이유다.

 친선전의 의미를 담고 있었던 아시아 시리즈는 4개팀(한국, 일본, 대만 2개팀)이 참가했다. 한국은 첫 날 경기서 대만 가오슝 시티 선발팀에게 4대2로 승리하며 산뜻한 출발을 보였으나 일본 대표팀과의 2차전에서 실책과 상대 투수 공략에 실패하며 2대6으로 패했다. 27일 마지막 날 대만 타오위안 선발팀과의 최종전에서는 4대1 역전승을 거뒀다. 한국은 대만 타오위안 선발팀, 일본과 나란히 2승 1패 동률을 이뤘으나 두 팀보다 실점이 많아 3위로 밀려났다. 우승은 타오위완 선발팀, 준우승은 일본이 각각 차지했다. 3위에 그치긴 했지만 한국은 이번 대회 우승팀 타오위안을 이겼다는 것만으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본에 패한 것은 아무래도 가슴 쓰린 일. 이 감독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훈련시간이 사흘 밖에 주어지지 않아 조직력을 다지는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최종결과에는 만족하지만 일본에 진 건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에 있을 청소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는 라이벌 일본을 이기고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 목표”라고 다짐했다.

악바리 선수에서 명장으로

북일고 이정훈 감독은 ‘감독’이라는 현재위치 보다 빙그레 이글스 유니폼을 입은 모습이 야구팬들에게 더욱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프로야구가 탄생한지 30년 가까이 되는 세월 동안 ‘악바리’라는 별명을 얻었던 선수들은 간 혹 있었다. 그 중에서도 ‘원조’를 꼽으라면 단연 ‘빙그레 이정훈’이다. 왜소한 체격(171㎝) 탓에 연고구단 삼성의 지명을 받지 못했던 이정훈은 어쩔 수 없이 빙그레 유니폼을 입어야 했다.

 삼성에서 버림받은 이정훈은 치열한 야구판에서 살아 남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그 결과 이정훈은 데뷔 첫해였던 1987년 3할3푼5리 4홈런 34타점 20도루의 기록으로 신인왕에 올랐다. 이후로도 그는 타격왕을 두 차례(1991, 1992년)나 거머쥐었고, 골든 글러브도 4번(1988, 1990, 1991, 1992년)이나 낄 수 있었다. 프로 11년 통산 성적은 타율 2할9푼9리 66홈런 353타점 151도루.

 “빙그레 ‘다이너마이트 타선’ 하면 이정훈, 장종훈, 이강돈, 강정길 이었지. 상대팀 에이스가 등판해도 우릴 무서워할 정도였어. 하지만 이렇게 좋은 선수로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한 게 너무 아쉬워.”

 이 감독은 현역 시절 준우승만 4번 했다. 99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의 기쁨을 맛봤지만, 선수도 감독도 아닌 코치 신분이었다.

 하지만 이 감독은 현역시절에 못 이룬 꿈을 고교 야구에서 이뤘다. 2009년 봉황기 대회 우승, 2010년 대통령배 대회 우승 등 부임 후 3년 동안 국내 대회를 모두 석권했다. 그 결과 천안 북일고는 전국 60여 고교팀 중 종합 랭킹 1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 감독은 봉황대기 우승이 ‘내 생애 최고의 우승’이라고 했다. “개인적으로 99년 한화 코치 이후 10년 만의 우승이었지. 부임 후 앞선 대회에서 준우승에 그쳤기 때문에 이때 우승이 그 어떤 대회보다 더 값진 우승이였어.”

 북일고 야구팀은 매일 밤 12시에 훈련을 마친다. 밤 늦게까지 진행되는 훈련 탓에 이 감독의 취침시간은 빨라야 새벽 1시다. 밤 12시까지 선수들을 지도하고 나면 몸은 녹초가 되지만 곧바로 잠을 청할 수도 없다. 전력분석과 훈련 스케줄을 짜다 보면 새벽 1시를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다.

 “2009년 감독이 되면서부터 ‘내 머리와 내 가슴속에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있다. 내 열정이 제자들을 진정한 야구선수로 만든다’고 생각해 왔지. 몸이 좀 힘들어도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 흐뭇해.”

연습만이 살 길이다

아시아 최고의 홈런왕 이승엽의 우상은 타격의 달인 장효조도 야구의 전설 장훈도 아닌 이정훈 감독이라고 한다. 이 감독과 이승엽의 인연은 1995년 이 감독이 삼성으로 이적한 뒤부터다. 이 감독은 이승엽에게 ‘진정한 노력은 절대 배반하지 않는다’며 연습을 강조했다.

 “원래 승엽이는 투수로 삼성에 입단했어. 그때 난 팀내 최고참이었고. 승엽이가 타자로 전향한 뒤부터 스윙연습을 강조했어. 워낙 뛰어난 선수라 기술적으로 가르쳐줄 건 없었지만 연습만이 살 길이라고 조언해줬지. 지금도 부원들에게 연습을 게을리하면 안된다고 거듭얘기하고 있어.”

 실제로 이 감독은 현역시절 하루에 300~400개씩 스윙연습을 했다고 한다. 경기에서 무안타를 기록하면 분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승부욕이 강했다. 상대했던 투수의 사진을 붙여놓고 분이 풀릴 때까지 스윙연습을 했다.

이 감독은 “적어도 야구 선수라면 젊은 나이에 목숨은 바치지 못하더라도 미쳐서 야구할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라며 “이곳에 처음 왔을때 선수들의 수준이 생각보다 많이 낮았는데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헤어지기 전 “아마도 우리 학교가 고교 야구팀 가운데 가장 많이 훈련할 것 같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조영민 기자, 사진= 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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