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전통 기법 복원하자니 인건비가 … 숭례문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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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경희
문화부문 기자

5일 오후 들러본 국호1호 숭례문 복구 공사 현장. 연내 공사가 완료될 예정인데, 현장에선 돌 쪼는 소리도 나무 다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석공들은 추운 날씨 탓에 관람객이 찾아오는 주말에만 일한다고 한다. 게다가 목공사는 한달 전부터 중단됐다. 날씨가 아닌 목공들 ‘품삯’ 탓이다.

 사정은 이렇다. 문화재청은 화마에 희생된 숭례문을 전통 기법으로 복원하는 중이다. 기계를 동원하면 문화재 공사와 여느 건설 현장과 다를 바 없고, 옛 방식을 써야 전통 기능도 전승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충분히 박수를 보낼 만한 결정이었다.

 그런데 막상 실행 단계에선 잡음이 생겼다. 현장 목수들에게 지불할 인건비가 동나 목공사가 중단된 것이다. 신응수 대목장은 “1962년 숭례문을 중수(重修)할 때도 기계를 어느 정도 사용한 뒤 손맛을 가미했다. 그런데 문화재청에선 1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 기법을 고수하라고 하니, 하루면 끝낼 일이 2~3일 걸린다. 인건비 예산을 늘리는 등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숭례문 복구 예산 250억원 중 순공사비는 168억원, 그 중 목공사비로 15억8000만원이 책정됐다. 시공사인 명헌건설은 13억2300만원에 신응수 대목장과 목공사 계약을 했다. 하도급 계약 과정에서 목수들에게 돌아갈 인건비는 더 줄어들었고, 전통기법으로 공사가 더디 진행되다 보니 인건비가 동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문화재청 숭례문복구단 이정연 사무관은 “문화재 공사는 일반 건축 공사와는 당연히 다르다. 원칙적으론 전통기법을 써야 하는데 이전엔 현장에서 기계를 써 비교적 손쉽게 돈을 벌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장인들이 익숙한 전동공구 대신 숙련도가 떨어지는 전통도구를 사용함으로써 발생한 문제다. 공사엔 차질이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화재 복구 현장에서 ‘전통 도구에 익숙하지 않은 장인’을 두고 봐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고, 온 국민의 눈길이 집중된 숭례문 공사가 인건비 문제로 중단된 것도 황당하다. 더욱이 앞으로 다른 문화재 공사 현장에서 이런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도 얼마든 남아있다. 문화재청이 지난해 3월 고시한 ‘문화재수리 표준 품셈’ 개정안에 따르면 전통기법이 아닌 기계를 사용할 경우 인건비가 대폭 삭감되기 때문이다. 전통의 딜레마에 빠진 국보 1호의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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