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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새해에 외쳐보는 ‘신 정명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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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

“임금은 임금답게, 아버지는 아버지답게”로 요약되는 정명론(正名論)은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삼는 유교사상의 핵심이다. 2012년 새해벽두에 이 해묵은 정명론을 새삼 되새겨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유교사회가 태어난 신분을 중시하는 위계사회라면 민주사회는 “왕후장상에 씨가 없다”고 공언할 정도로 평등사회다. 하지만 민주사회라고 해서 직책에 대한 헌신성을 가볍게 여기는 어수룩한 사회는 아니다. 서구인들은 자신의 직책에 엄숙히 임해야 할 이유를 ‘소명의식’에서 찾았다. ‘소명(召命)’이란 부른다는 뜻이다. 누가 부르는 것인가. 신이 부를 수도 있고 나라나 국민이 호명하기도 한다. 호명의 주체는 다양하나 불림에 충실히 응답하는 것이 ‘소명의식’이다.

 누가 그랬던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라고.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산은 산처럼 묵직하지 못하고 깃털처럼 가벼우며, 물은 물처럼 순수하지 못하고 물에 술 탄 듯 흐릿해진 상황이 특징이다. 대통령을 보라. 대통령은 CEO가 아니고 정치인이다. CEO는 자신의 참모를 거느리고 수하사람들에게 명령과 지시를 내리면 되지만, 대통령은 관료조직의 수장을 넘어 국민에게 직접 다가가는 ‘소통자’가 되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것이 부족했다. CEO형 리더십 대신 정치인다운 리더십을 발휘하라는 충고를 수없이 받았는데도 중대한 쟁점사안이 생길 때마다 몸을 사리고 국민과 소통하는 일을 등한히 했다. 여의도 국회도 멀리했다. 일만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통 없이 일만 하겠다는 것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아나운서 노릇 하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준비된 서류에 사인만 하는 것을 어떻게 대통령의 소명이라고 하겠는가. 담대한 연설이 없으니 설득은커녕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감동시킬 수도 없다.

 한국 정치가 말이 없는 ‘묵언(<9ED9>言)의 관료형 정치’가 된 데는 소통을 싫어하는 대통령의 탓이 크다. 그러다 보니 소통의 불모지대에 연예인들이 대거 끼어들기 시작했다. 지금의 정치담론을 보라. 그걸 주도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이 아닌 연예인들이다. 연예인들이 자신의 인기를 무기로 정치적 사안에 대해 깊은 생각 없이 이런저런 느낌을 토로하면 팔로어들에게 퍼져나가 여론이 된다. ‘나꼼수’가 인기를 얻고 ‘애정남’이 위력을 발휘하게 된 것도 ‘소통 없는 정치’의 기막힌 역설이 아니겠는가.

 국회는 어떤가. 세비 올리고 지역구 사업을 챙기는 데나 합의가 있을 뿐 쟁점이 생기면 여야가 어김없이 물리적 충돌로 치닫는 ‘근육질 국회’가 우리 국회다. 어떻게 신성한 국회의사당에서 최루탄을 터트릴 수 있는가. 최루탄을 터트린 장본인은 반성은커녕 한술 더 떠 안중근 의사의 이름까지 들먹거린다. 여당 국회의원의 비서들이 선관위에 디도스 공격을 해댄 것도 ‘좀비의 나라’에서나 있을 법한 기상천외한 일이지만, 국회의원이 최루탄을 터트렸는데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지나가는 국회야말로 세상에 둘도 없는 국회다.

 사법부는 온전한가. 최근 일부 판사들은 자신에게도 생각이 있고 입이 있다며 트위터로 말하기 시작했다. SNS시대의 특징이 고작 판사들이 입을 열고 말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사도판사’로 불리는 김홍섭 판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안다. 그는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오판할 우려가 있다며 평생 겸손한 구도자처럼 산 사람이다. 지금 우리 판사들에게는 ‘내로라’하는 교만함만 있을 뿐 오판 가능성에 대한 겸허함이 없다. 세상일에 “배 놔라 감 놔라” 하면서 자신의 판결만은 신성불가침의 것으로 인정받겠다는 태도야말로 소명의식 없는 판사들의 오만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보면 헌법기관만 물에 술 탄 듯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신(神)의 일’과 ‘카이사르의 일’을 분간하지 못하는 성직자들을 보라. 그들은 지금도 4대 강 사업이 신앙과 배치된다며 결사반대하고 있고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농성도 마다하지 않는다. 전교조 교사들은 어떤가. ‘참교육’을 외치고 나왔지만 정작 그들이 외치고 있는 것은 반미와 친북통일주의다. 멀쩡한 대한민국에 문제가 많은 양 험담을 하고 비방을 늘어놓다가 문제가 되면 수업을 재미있게 하기 위함이라고 둘러댄다.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적은 사회, 조금이라도 자기 자리에서 성공했다고 느끼면 정치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회는 결코 ‘신(新)정명’의 사회가 아니다. 자신의 일에서 한 우물을 파는 사람이 많아지고 자신의 직책에서 소명의식을 불태우는 정신이 넘쳐흐를 때 비로소 충분히 발효된 포도주와 같은 원숙함이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 2012년 새해에 ‘신정명론’이 힘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의 근거다.

박효종 서울대 교수·윤리교육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