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민노총 위원장의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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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문제 등 노동계 전체가 위기상황인데 (민주노총의) 내부 분란을 더는 방치할 수 없었습니다."

민주노총 이수호 위원장은 18일 기자회견을 하고 전날 노사정 대화 참여를 결정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쾌청한 날씨 얘기로 회견을 시작했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다.

민주노총이 전날 내린 결정은 중앙집행위원회라는 절차를 거쳤지만 사실상 이 위원장이 이끌어낸 것이나 다름없다. 이 위원장은 노사정 대화 참여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사정 대화의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을 경우에는 자신을 중심으로 한 현 지도부는 회복불능의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노사정 대화에 반대하는 한 노조 관계자는 "비정규직 법안이 큰 수정 없이 4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된다면 집행부는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의원 대회를 무산시켰던 전노투의 한 회원은 "엄청난 배신행위와 이적행위를 저지른 이수호 집행부와는 타협이 없다"며 "투쟁으로 집행부를 타도하자"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이 위원장은 비정규직 법안 논의에 전력을 쏟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그는 "정부가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대화를 하지 않겠다면 빼고라도 하겠다"며 "정부가 이미 결정된 법안이라 어쩔 수 없다고 한다면 이는 관료주의적인 형식논리에 불과하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평소 주장해온 "대화를 병행하지 않는 투쟁 만능주의는 노동계급에 도움이 안 된다"는 소신대로 행동하고 있다.

이수봉 교육선전 실장은 "이번 민주노총의 위기 상황은 새끼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으로 성공하려면 어미의 체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노총의 대화 노력에 대해 사용자와 정부.정치권이 적극적으로 '화답'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계와 정부는 민주노총과의 비정규직법안 논의에 대해 부정적이다. 하지만 합리적인 노사정 관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민주노총 지도부의 대화 노력을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투쟁만을 외치는 일부 과격 노동세력의 막가파식 행태를 잠재우는 길이다.

정철근 정책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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