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만원 벌어 95% 통장 넣는 노숙인 저축왕 … “가족과 다시 만나는 꿈이 있거든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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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노숙인 저축왕 이모(45)씨가 2일 천호역에서 사다리를 놓고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버는 돈의 95%를 통장에 넣을 정도로 악착 같은 저축 덕에 신용불량에서 벗어났다. [오종택 기자]

노숙인 송모(53)씨에게 불행이 닥친 건 2004년이었다. 1996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 시작한 제조업체가 중국산 제품에 밀려 어려움을 겪다 부도를 맞았다. 졸지에 20억원의 빚을 지고 신용불량자기 된 그는 아내 명의로 돼 있던 아파트를 떠올렸다. 아파트를 담보로 2억원을 대출받아 주식투자에 나섰다. 결과는 참담했다. 그나마 다 날렸기 때문이다. 온 가족이 방 2개짜리 월세 집으로 옮겨갔다. 가족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그는 2008년 12월 한강에 몸을 던졌다. 눈을 떠보니 병원 응급실이었다. 지나가던 시민이 119 신고를 하면서 극적으로 목숨을 건졌다.

 다음해 공공근로 일을 시작한 그에게 채권자들의 압류가 시작됐다. 그는 아내를 위해 이혼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겐 ‘노숙인’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거리를 떠돌던 송씨가 새 출발을 한 것은 2010년 2월 ‘구세군 서대문사랑방’이라는 노숙인 쉼터에 들어가면서부터다.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공공근로를 포함해 그에게 떨어진 일감은 닥치는 대로 받아들였다.

 송씨는 “학원에도 못 보냈는데 2009년 서강대 수시모집에 합격한 딸과, 다음해 한양대에 장학생으로 합격한 아들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말했다. 지난해 3월부터 그는 개인 워크아웃에 참여해 월 9만원씩 신용회복위원회에 빚을 갚고 있다. 급식소에서 일하며 버는 돈은 매달 내는 워크아웃 비용을 빼곤 모두 저축하고 있다. 그의 꿈은 작은 임대아파트를 얻어 가족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잘나가던 영어학원 강사 이모(45)씨도 송씨와 ‘닮은 꼴’ 인생이다. 무모한 주식 투자는 그를 거리로 내몰았다. 2005년 아내와 헤어졌고, 2010년 자살까지 시도했다. 그를 바꾼 것은 지난해 4월 노숙인 쉼터에서 만난 상담사의 격려였다. “당신은 이제 더 이상 떨어질 곳이 없다.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말에 그는 건설 일용직 일을 시작했다. 지금은 월 150만∼170만원 정도의 수입 중 95%를 저축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으고 있다. 통장 4개에 담긴 1940만원의 저축액은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이미 신용불량자 꼬리표는 던져 버렸고, 최근엔 건강보험료까지 납부했다. 이씨는 “앞으로 5년간 1억원을 모아 중3인 딸과 함께 살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송씨와 이씨는 모두 보호시설에서 생활하는 노숙인들을 대상으로 서울시가 선발한 올해의 저축왕 70명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다. 이들 70명은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 동안 한 사람당 평균 656만원을 벌어 375만원을 저축했다. 이들 중에는 한국인 남편의 가정폭력을 견디다 못해 거리로 나선 필리핀 여성, 장애를 가진 노숙인 등 사연도 다양하다.

 액세서리 공장 부도로 거리로 나온 정모(54)씨는 파산면책을 신청해보라는 권유를 뿌리치고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정씨는 “빚진 죄인으로는 못 산다”며 집수리와 도배 일을 하면서 매달 23만원씩 8년간 갚는 채무조정안을 이행 중이다. 정씨는 “빚을 다 털어버리면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구세군서대문사랑방 김수민 자활팀장은 “이들이 재활 의지를 불태우는 원동력은 가족 사랑”이라며 “주변의 격려가 이들의 자활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글=최모란 기자

서울시 저축왕 70명 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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