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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 대신 아이패드 보는 손열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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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악보대에 아이패드를 올려 놓고 리스트가 편곡한 합창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다. [금호아트홀 제공]

지난달 22일 서울 종로구 금호아트홀. 지난해 차이콥스키 국제콩쿠르 2위를 차지한 피아니스트 손열음(25)씨가 이날 마지막곡을 들려주기 위해 무대에 섰다.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4악장을 프란츠 리스트가 피아노에 맞게 편곡한 곡이었다. 앞서 멘델스존의 ‘결혼행진곡과 요정들의 춤’을 들려준 손씨는 관객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에 입장했다. 그의 손에는 애플의 아이패드가 들려 있었다.

 아이패드를 피아노 악보대에 올려놓은 손씨는 베토벤의 합창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20분 넘게 이어진 연주의 중간에 손씨는 왼손 검지손가락으로 아이패드를 가볍게 터치했다. 그러자 아이패드에 그려진 합창의 악보가 넘어갔다. 손씨는 화면에 그려진 악보를 보고 베토벤의 합창 4악장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이날 공연에는 피아노 악보를 넘겨주는 페이지 터너(page turner)도 전통적인 종이 악보도 없었다.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은 스코어(score)라고 불리는 종이 악보를 보지 않고 음악을 외워서 연주한다. 피아노 협주곡과 같이 악기가 많이 등장할 경우에는 악보를 넘겨주는 페이지 터너와 함께 무대에 오른다. 페이지 터너는 연주를 지켜보다 악보를 넘겨준다.

손열음

 손씨가 연주를 마치자 관객들의 박수 소리가 공연장에 울려 퍼졌다.

 관객들은 손씨가 연주를 마치고 아이패드를 들고 인사를 하고 나서야 악보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피아니스트가 공식적인 연주회장에 아이패드 악보를 들고 나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달 29일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금호아시아나 솔로이스츠 공연을 마치고 백스테이지에서 만난 손씨는 “악보가 무거워서 연습할 때는 아이패드를 많이 사용한다”며 “악보가 많으면 들고 다니는 것도 고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메트로놈(음악의 박자를 알려주는 기계) 대신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면서 메트로놈을 대신해 활용한다고도 말했다. ‘forscores’라는 애플리케이션 덕분이다.

 클래식 음악이 보편화된 서양에서도 IT 기기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뉴욕타임즈는 지난해 11월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제프리 카한이 공연 중에 아이패드를 가지고 연주 및 지휘를 한 것을 보도했다.

카한은 이날 하프시코드(피아노의 전신)를 연주하면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지휘했다고 한다. 뉴욕타임즈는 ‘클래식 음악 지휘에 맞는 애플리케이션이 있다(Classical Conducting? There’s an App for That)’는 제목을 달았다.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은 2010년 한 공연에서 앙코르 곡 ‘왕벌의 비행’을 아이패드에 설치된 피아노 애플리케이션으로 연주해 화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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