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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새해를 맞이하소서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51호 27면

흰 눈이 꽤 쌓였다. 설핏설핏 몇 번 스치듯 지나가더니 이번엔 제대로 야무지게 내린다. 절 마당을 가로지르며 새겨진 발자국은 이내 사라진다. 새벽녘에 보이는 눈의 부피라고 해봐야 장명등 불빛 면적에 불과하지만 쌓이는 양은 이 세상의 크기만큼이다. 지난 한 해의 이런저런 묵은 것들을 모두 덮어버리고 새롭게 시작하라고 하얀 여백을 만들어주는 것이리라.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그리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화가인 우리의 몫이다.

삶과 믿음

어느 화가의 작업실로 사용하던 자리에 얼마 전부터 인연이 닿아 머물고 있는 인근의 도반 암자로 송년모임 삼아 마실을 갔다. 차로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이미 예술가의 손길을 거쳤고, 이후에 그 스님의 만만찮은 미감까지 더해진 공간이다. 특히 눈 내리는 날은 넓은 창문을 통해 바깥 경치를 바라보며 차를 마시기에 제격이다. 큰 길의 눈은 바퀴가 닿는 곳만 녹아 있었지만 그래도 몇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있는 동네와 겹쳐진 암자 입구 샛길은 비질이 끝난 상태였다. 시내 큰절에서 주지를 할 때는 일찍 배달된 조간신문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던 쫓기는 삶이었노라고 했다. 이제 느지막이 집배원이 갖다주는 신문을 펼쳐놓고 느긋하게 읽을 수 있는 현재의 여유로움을 더 사랑한다는 그의 말에 참으로 공감했다. 오는 길에 ‘차갑게 즐겨라. 뜨겁게 놀아라’는 유명 스키장의 광고문을 단 버스는 눈도 제대로 치우지 않은 대로를 미끄러지듯 내달렸다.

아무리 조심해도 갈 때마다 한번 정도는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기 마련인 설산 천왕봉에 올랐다. 산등성이 언 눈 위에 다시 눈이 쌓이기를 이미 몇 번 반복한 상태였다. 이 눈이 녹아 한강이 되고 금강이 되고 낙동강이 된다는 삼파수(三波水) 구역은 샘솟는 물이 전혀 없다. 그럼에도 좋은 물을 찾아다니는 동호인들에게는 ‘별스러운’ 성지다. 같은 하늘에서 동일한 모양의 흰 눈으로 떨어져 겨울 내내 언 채로 빙하처럼 엉겨 붙어 함께 있다가, 이듬 해 봄날 녹으면서 흐르는 방향에 따라 전혀 다른 이름을 가진다는 이 경이로운 사실 앞에, 발길을 멈추고서 무형의 ‘명천(名泉)’을 바라보며 한참 동안 서 있었다.

새해 아침에 많은 순례객들이 이 봉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화엄경은 ‘해가 동녘에 떠오르면 가장 높은 상봉을 제일 먼저 비추고, 이어서 고원지대를 비추며, 그런 연후에사 일체대지 평야에 비친다. 그렇다고 해서 태양이 차별하는 마음을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어느 곳인들 해가 뜨지 않고 어딘들 해가 비추지 않으리오마는 보통사람들은 새해 첫날이기 때문에 높은 산으로 동해바다로 모여드는 풍속도를 만들었다. 해가 가장 빨리 혹은 가장 아름답게 뜬다는 관광지역과 일출명소 사찰들의 안내문을 접하는 것도 이맘때면 흔한 일이다.

변산 월명암의 학명(1867~1929)은 ‘그냥 흘러갈 뿐인 시간을 굳이 묵은 해니 새해니 하면서 애써 구별하고 싶지 않다’는 초연하면서도 약간 시들마른 듯한 송년시를 남겼다. 하지만 이런 스님에게 교토 원각사에 머물렀던 소오엔(宗演·1859~1919)은 ‘나는 이제 묵은 해를 보내지만 그대는 새해를 맞이하소서’라는 연하장을 보내왔다. 어쨌거나 새해라고 너무 유난스럽게 떠드는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날이 그날’이라는 지나친 무덤덤함 역시 일상의 소소한 재미를 스스로 덜어내는 일이다. 그래서 저장성에 살았던 경청(鏡淸·864~937) 선사는 평범하지만 더 가슴에 와닿는 신년사를 남겼다.
‘새해 아침 복을 여니 만물 모두가 새롭구나(元正啓祚 萬物咸新)’.



원철 한문 경전 연구 및 번역 작업 그리고 강의를 통해 고전의 현대화에 일조하고 있다.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 소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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