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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것 … 젊은 세대와 어떻게 공존할 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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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102세 할머니가 전신마취로 6시간짜리 대장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아 ‘100세 암수술 시대’를 열었다. 부럽고 감탄스럽다. 많은 이들이 용기와 희망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단편 ‘황혼의 반란’ 속에서라면 할머니는 수술받을 꿈조차 꾸지 못했다. 초고령사회 프랑스에서 노인 배척운동이 일어난다. 학자들이 TV에 나와 “사회보장 적자는 노인들 때문”이라고 외친다. 정치인들도 “의사들이 노인층에 약을 너무 쉽게 처방한다”고 비난한다.

 여론이 조성되자 정부가 나서서 먼저 인공심장 생산을 중단시킨다. 대통령은 신년 담화에서 “노인들을 불사(不死)의 로봇으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생명에는 한계가 있고, 그 한계는 존중돼야 합니다”라고 선언한다. 곧바로 70세 이상은 약값·치료비 지급을 제한하고 80세부터는 치과, 85세는 위장 치료, 90세는 진통제 처방에 대해 환급을 중지한다. 100세 이후는 모든 무료 의료서비스 금지다. 젊은이로 구성된 체포조가 전국을 돌며 노인들을 붙잡아 ‘휴식·평화·안락센터’에 가두고 독극물 주사를 놓아 죽인다. 그러자 노인들이 들고 일어나 생존을 위한 게릴라 투쟁을 시작한다….

 ‘황혼의 반란’의 대척점에 영화 ‘아일랜드’가 있다. 인간복제가 가능해진 2019년. 부자들의 질병·부상에 대비해 복제품 인간들을 따로 비밀리에 사육하는 수용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소설이든 영화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 중인 우리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이 크다. 한국은 두 상상의 세계 중간 어디쯤에 놓여 있다. 실제로 고령자가 쓰는 의료비는 가파른 증가세다. 의료예산 증액은 한계가 있으니 젊은 세대에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의료뿐일까. 고령자 운전 문제 하나만 봐도 그림자는 점점 짙어지고 있다. 65세 이상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는 지난 10년 사이 3배 넘게 늘었다. 960번째 도전에서 운전면허를 따내 ‘959전 960기’ 신화로 유명한 차사순(70) 할머니도 몇 차례 교통사고를 낸 뒤 운전대를 놓았다고 한다. 기어 조작을 착각해 벽을 들이받고 감나무에도 돌진했다는 것이다. 65세 이상 운전면허 보유자가 1275만 명이나 되는 일본에서는 고령자가 면허증을 반납하면 버스·택시 요금 할인, 상품권 같은 혜택을 준다. 일본도 고령자 교통사고가 지난해 10만6000건으로 사상 최고였다.

 운전부터 의료·일자리·주거·여가생활까지 고령화가 걸리지 않는 문제는 없다. 청·장년층과 하나하나 사회적 합의를 모색해야 할 판이다. ‘황혼의 반란’에는 ‘노인 한 명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나온다. 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도서관’들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 여기에 우리 사회의 미래가 걸려 있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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