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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9) - 태릉선수촌의 숨은 일꾼들

중앙일보

입력

시드니올림픽 메달의 꿈이 익어가는 태릉선수촌에 선수들의 최종훈련이 막바지에 이를 때 누구보다도 신경을 곤두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감독이나 훈련관계자는 아니지만 올림픽에 나가는 대표선수들의 건강과 안전을 돌보는 사람들.

그 중 하나가 선수촌의 식당 2층에 있는 의무실에서 선수들의 부상을 치료하는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 이종하(39.재활의학전문의) 박사다.

"요즘은 큰 부상보다는 올림픽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오면서 스트레스 증가로 인한 고통을 호소해오는 경우가 많다"며 이박사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선수촌의 의사는 육체의 병을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수의 정신적인 문제도 세밀히 살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이 때문에 이박사는 의무실을 찾아오는 선수에게 의사와 환자간의 거리감을 좁히는데 항상 신경을 쓰고 있다.

96년부터 선수촌에서 선수들을 돌봐온 이박사는 "잔부상에 시달리는 선수들을 치료하다보면 의외로 가정이나 개인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는 의사로서가 아니라 형이나 오빠처럼 선수의 사정을 듣고 같이 의논한다"고 말했다.

선수들의 영양상태를 체크하고 균형잡힌 식단을 준비하는 영양사 한정숙(36)씨 도 선수촌의 숨은 일꾼이다.

오전 8시에 출근해 전날 남은 음식재료를 점검하고 식단 구상, 위생상태 확인, 아침과 점심 식사준비 등 눈코 뜰새 없는 일을 마친 오후 2시께야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다.

96년 경남 진해선수촌에서 영양사직을 맡은 뒤 98년 태릉선수촌으로 자리를 옮긴 한정숙씨는 "언제나 영양가 있고 맛있는 식단을 내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체중조절 때문에 마음대로 먹지 못하는 선수가 가장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씨는 요즘같은 한여름에는 더위에 지친 선수들의 식욕이 떨어지기 때문에 조리법을 다양하게 하고 음식 색상에도 각별하게 신경을 쓰고 있다.

선수들의 수송을 맡고 있는 운전기사 김달해(59)씨는 이번 올림픽이 남다르다.

16년째 태릉선수촌에서 이 일을 해왔지만 내년에 정년을 앞둔 김씨에게는 이번이 선수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마지막 올림픽이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선수촌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미사리축구장이나 한국체육대 수영장 등으로 선수를 태우고 나갈 때 교통안전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대표선수들을 지켜본 김씨는 "그래도 체격이 작은 선수들이 매운 맛이 있었다"며 "한국이 스포츠강국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선수들의 강한 승부근성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밖에 종이 한장의 실력차이로 대표선발에는 떨어졌지만 선배나 후배의 훈련의 돕는 스파링 상대 70여명이 선수촌에 합류, 금메달 조역을 자처했다.

금메달의 산실 태릉선수촌에는 선수와 코칭스태프뿐만 아니라 숨은 일꾼들의 땀냄새도 진하게 배어나고 있다.(서울=연합뉴스) 최태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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