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러시아 조난 선박, 아라온호는 성탄 선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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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남극에서 조난된 러시아 어선을 구조하기 위해 한국의 아라온호(왼쪽)가 25일 조난 어선인 스파르타호에 접근하고 있다. [남극해=연합뉴스]

한국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가 25일 남극 바다에서 조난당한 러시아 선박 구조에 나섰다. 국토해양부는 이날 오후 5시10분쯤(이하 한국시간) 아라온호가 남극 로스해에 도착, 러시아 어선 스파르타호의 구조 작업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32명이 탑승한 스파르타호는 15일 빙하에 부딪혀 조난당했다. 선원들은 긴급 구조를 요청했지만 주변 여건상 일반 선박이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 때마침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항에 입항해 있던 아라온호는 17일 구조를 위해 긴급 출항했다.

사고 현장까지는 약 2000해리(약 3700㎞)로 최고 속도(약 시속 30㎞)로 달려 23일 남극권에 진입했고, 이어 이날 현장에 도착했다. 아라온호는 스파르타호에 수리 장비를 전달하고, 연료를 일부 옮겨와 배를 뜨게 하는 방식으로 수리를 도울 계획이다. 김예동 남극대륙기지 건설단장은 국토부에 “26일까지 수리를 도운 뒤 27일 어선을 얼음이 없는 지역까지 인도할 예정”이라며 “만약 수리가 여의치 않을 때는 선원들을 남극의 외국 기지에 인계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열흘간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며 사투를 벌여 온 러시아 선원들로선 이날 잊지 못할 성탄 선물을 받게 됐다.

아라온호는 2003년 남극 세종과학기지에서 동료 구조에 나섰다 순직한 고(故) 전재규 연구원의 못다 이룬 꿈이 담긴 배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 이후 열악한 현지 연구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며 쇄빙선 건조 계획이 급물살을 탔고 2009년 아라온호가 진수됐다. 한 젊은 연구원의 희생이 남극 해역에서 32인의 인명을 구하는 씨앗이 된 셈이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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