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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여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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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내년 세계경제는 유럽의 침체, 미국의 저성장, 중국 등 신흥국의 급격한 경기하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아시아 경제는 내리막길을 걷는 중국에, 중남미는 선진국과 중국의 수요 감소로 하락할 원자재 가격에, 중유럽과 동유럽은 유로존의 위기에 각각 노출돼 있다. 중동 소요 사태는 심각한 경제적 위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유가가 급등한다면 경제 성장은 더욱 위축될 것이다.

 유로존의 침체는 깊이와 기간을 도무지 예측하기 어렵다. 신용경색과 국가부채 문제, 경쟁력 쇠퇴, 재정긴축 등이 모두 침체를 부르는 요인이다. 미국도 유로존의 위기로부터 상당한 악영향을 받을 것이다. 미국 경제는 재정적자의 악화, 가계부문의 부채 문제, 심화되는 불평등 등 여러 위험에 직면해 있다. 일본은 정부가 구조적 개혁을 추진하지 못해 3·11 대지진 이후 체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중국식 발전 모델의 결함도 두드러지고 있다. 부동산 가격의 하락이 건설업체나 투자자, 정부 부문 등 다방면에 걸쳐 연쇄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악순환이 시작됐다. 건설 붐은 정체되고 성장을 이끌던 수출은 선진 시장의 수요 감소라는 악재를 만났다.

 미국·유럽·일본은 중요한 경제·재정·금융 분야 개혁에 늑장을 부렸다. 지속 가능한 균형 성장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개혁들이었는데도 말이다. 선진국에서 민간과 공공 부문의 부채 줄이기는 거의 시작도 못했다. 단지 일부 우량 기업만 부채를 줄였을 뿐이다. 중국의 제조업과 각국의 부동산 부문에 대한 과잉 투자는 ‘꼬리위험(tail risk·발생 빈도는 낮지만 발생하면 피해의 정도가 큰 위험)’이 발생할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

 기업 구조조정에 따른 일자리의 감소는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가계의 수입이 줄어들면 총수요가 줄어든다. 게다가 불평등은 대중적 불만을 불러일으킨다. 이로 인한 사회·정치적 불안정성은 경제에 또 다른 위험요인으로 작용하게 마련이다.

 미국과 중국 간, 유로존 내 중심부와 주변부 간 경상수지의 불균형도 여전하다. 이를 재조정하려면 미국 같은 적자국에서 국내 소비를 줄여야 한다. 중국 등 흑자국에선 통화가치를 올리고 내수를 부양해야 한다. 하지만 통화가치의 조정은 제자리걸음이다. 흑자국들이 통화가치 절상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년 세계경제 성장세가 더 약화된다면 환율전쟁은 무역전쟁으로 비화할 것이다.

 정책담당자가 쓸 만한 수단이 동났다는 것도 큰 문제다.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제로섬 게임이다. 모든 나라가 동시에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모두 수출을 늘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통화정책은 선진국에서 인플레이션이 문제되지 않을 때나 통한다. 재정정책은 늘어나는 재정적자와 국가부채, 유럽연합 내 새로운 규제 등으로 제약받고 있다. 금융기관을 구제하는 것도 이제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정책이 됐다. 파산 직전의 정부에는 구제작전을 펼 돈마저 없다. 선진국과 신흥국 간에는 이익·목표·세계관이 충돌함에 따라 국제적으로 정책 공조를 하는 것도 쉽지 않다. 신규 대출로 지불능력 문제를 땜질 처방하는 방식으로 가계·금융·정부 부문 부채나 시장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자칫 고통과 무질서만 유발할 수 있다. 약화된 경쟁력이나 경상수지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한 통화가치 조정은 일부 국가의 유로존 이탈을 야기할지 모른다. 세계경제는 전례 없는 부채 축소 없이 견고한 성장을 회복할 수 없다. 내년에도 세계경제는 취약하고 균형 잃은 모습일 것이다. 베트 데이비드의 ‘이브의 모든 것’에 나오는 말이다.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여라. 울퉁불퉁한(bumpy) 해가 오고 있다.”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
정리=허귀식 기자 ⓒ Project Syndic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