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빈, 중 미사일 기밀 북에 줘 … 북한 신의주특구 조성 무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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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1년 야심 차게 추진한 신의주특구가 좌절된 배경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김 위원장 사망을 계기로 제기됐다. 김 위원장이 신의주특구 행정장관으로 발탁했던 네덜란드 국적의 양빈(楊斌·48·사진) 전 유라시아(歐亞)그룹 총재가 중국의 미사일 기술을 북한에 흘려줬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핵심이다.

 중국의 한 소식통은 23일 “중국 해군 포병부대 출신의 양빈은 북한 공작원에 포섭됐던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이 중국 해군에서 미사일 제작에 참여한 양빈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관련 기술을 빼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표면적으로 양빈을 통해 선진 농업기법을 들여오려 했지만 중국 당국이 무기 기술 도입과 관련 있다는 의도를 포착하면서 양빈과 북한의 커넥션을 끊었다는 것이다. 소식통에 따르면 양빈은 네덜란드에 체류하던 시절 북한 공작원에 포섭돼 막대한 자금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양빈은 유라시아그룹을 거대 기업으로 키워 나갔다.

 중국 소식통의 주장은 그동안 공개된 내용들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있어 주목된다. 중국인 작가 관산(關山)이 쓴 『김정일과 양빈』에 따르면 김정일은 2001년 1월 상하이(上海)를 방문해 현대농업개발구의 유리온실을 시찰한 것을 계기로 양빈의 존재를 처음 접한 것으로 돼 있다. 1994년 이후 3년 연속 자연재해를 입은 북한이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 농법 도입을 모색하던 중 양빈의 유라시아 그룹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북한 인사는 2002년 1월 양빈에게 신의주에 27㎢의 경제무역구를 건설할 계획을 밝히면서 관리를 맡아 달라고 제안했 다. 양빈은 그해 9월 24일 특구행정장관에 정식 취임했다. 그러나 불과 열흘 만인 10월 4일 중국 공안에 연행됐다. 그는 징역 18년과 830만 위안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당시 중국이 양빈을 구속한 배경에 대해서는 여러 얘기가 돌았다. 중국의 특구 방해라도 주장도 있다. 단둥(丹東)과 마주한 신의주가 막대한 외자를 유치해 대대적으로 개발될 경우 중국에 불리하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나온 미사일 기술 관련 부분은 중국의 실정법 위반이나 중국의 방해 음모론과는 차원이 다르다. 중국과 북한이 무기 기술 유출을 놓고 물밑에서 심각한 갈등을 빚었으며 그 와중에 양빈이 구속돼 신의주특구가 동력을 잃고 결국 실패했다는 시나리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베이징=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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