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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넘어간다, 한 해 버거웠던 모든 것들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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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3년 전 이맘때였습니다. week& 송년호는 강화도에서 넘어가는 해를 보고 왔습니다. 굳이 강화도까지 가서 붉은 저녁 해를 보고 돌아온 건, 섬에 홀로 틀어박혀 있는 한 시인과 의례를 치르기 위해서였습니다. 함민복. 1996년 섬에 흘러들어와 동막리 어부들과 낙지 잡다 시 쓰고 술 마시다 시 쓰던 시인입니다. 시인이 털어놓은 2008년은 참 힘들었습니다. 십 년 넘게 살던 집에서 내쫓기다시피 나와야 했고, 여느 시인처럼 촛불 집회에 나갔다가 경찰로부터 폭행을 당해 입원을 했고, 시인을 낳아주고 시인에게 시적 영감을 불어넣어준 노모가 쓰러졌습니다(시인의 어머니는 이듬해 첫날 돌아가셨습니다). 떨어지는 해 바라보며 시인은 말이 없었지만, 석양에 물들어서인지 시인의 눈은 붉었습니다.

 이번 겨울 다시 강화도에 들어갔습니다. 올해도 시인과 함께 의례를 치르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걸음이 가벼웠습니다. 쉰 살이 된 시인이 올봄 장가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그 결혼식 장면이 생생합니다. 소설가 김훈이 주례를 서고 시인 이정록이 사회를 보고 가수 안치환이 ‘민복이는 꽃보다 아름다워’를 불러 젖혔던, 초청장 못 받았어도 “함민복 장가 가는 것만 한 구경거리가 어디 있느냐?”며 찾아든 500명이 넘은 하객으로 마냥 훈훈했던 그 결혼식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초지대교를 건너자마자 왼편에 번듯한 건물이 하나 서 있습니다. 초지인삼센터. 강화 주민이 모여 강화 인삼을 파는 쇼핑몰입니다. 이 건물 안에 두어 평 되는 시인의 가게도 있습니다. 변변한 일이 없던 시인이 장가 들고서 아내와 차린 가게입니다. 여기서 시인의 아내를 만났습니다. 박영숙. 시인의 강의를 듣다 같이 살게 된 동갑내기 신부입니다. 시인도 장가를 들고선 철이 들었는지, 아침마다 둘은 같이 가게에 나옵니다. 하나 이날은 시인이 마침 자리를 비웠습니다. 신부에게 이런저런 안부를 묻다 경기를 물었더니 이내 얼굴에 그늘이 졌습니다.

 “장사가 잘되는 것도 아닌데, 열심히 팔려고 하면 함 시인(신부가 신랑을 부르는 호칭입니다)이 뭐라고 해요. ‘그렇게 돈 벌어서 어디다 쓰려고 하느냐’고요. 양지 바른 곳에 작업실 하나 만들어주려는 마음도 몰라주고….”

  아무래도 강화도 해넘이는 효험이 있나 봅니다. 평생토록 삶을 버거워하던 시인도 여기서 해넘이를 하고는 늦장가를 갔지 않습니까. 강화도 여차리 해넘이를 보내드립니다. 이 해 앞에 여러분도 소원을 빌어보십시오. 힘겹고 억울하고 분했던 기억 모두 안고 가시고, 내년엔 희망 안은 새 해 둥실 띄워달라고요. 올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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