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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와 10시간] 하지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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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간이 만만찮아 이틀을 만나야 했다.

첫날은 그녀가 MC를 맡은 홍콩 위성 V채널 프로그램 〈바이브레이션 서울〉 녹화장에서였고, 소나기가 얄궂었던 둘째 날은 남산에 함께 올라 서울을 내려다봤다.

첫 영화 〈진실게임〉으로 올해 대종상 신인상을 거머쥐며 주목을 받았고 올해 대표적인 흥행작인 〈동감〉에선 톡톡 튀는 연기를, 공포영화 '가위' 에선 인상적인 눈빛 연기를 보여준 하지원(21.단국대 연극영화과 휴학 중). 다음달 MBC 〈신귀공자〉 후속의 미니시리즈 〈비밀〉(가제)에선 주연으로 〈팔색조〉(八色鳥)연기에 도전한다.

# 첫째 날

"절 지은이로 불러 주실래요."
"왜요."
"새 드라마에서 맡은 역이 지은이라…."

인터뷰 내내 그랬다. 생각하는 게 연기였다. 스물 한 살. 그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다부진 욕심이다. 요즘 신세대 스타라면 이나영.김민희 등을 떠올린다.

하지원도 이제 그 대열에 막 들어서려는 참이다. 근데 '얘길하며 알게 된'차이점이 있다.
이나영과 김민희가 '독특한 이미지?' CF를 통해 단번에 정상에 올라섰다면 하지원은 어린 나이 답지않게 그야말로 '바닥' 부터 밟아 올라온 경우다.

1997년 KBS 〈어른들은 몰라요〉에서 단역으로 데뷔했다. 이어 드라마 〈사랑보다 큰 잔치〉 〈학교2〉등에 출연했고 〈용의 눈물〉에선 무수리역을 맡았었다.

"저 알아요. 저보다 청순하고 예쁜 애들이 많다는 거요. 저는 그 쪽이 아니잖아요. 연기 잘하는 거 밖에 없더군요." 그녀가 이 말을 쉽게 말하기까지 사연은 이렇다.

98년 '바닥' 에서 그리 멀지 않을 즈음 우울증에 걸렸었다.
나름대로 한다고 해도 잘 안되니까. 남들은 쉽게 뜨는 것 같은데…. 그때 마음을 다잡았다. 부족한 것을 채워보자고. 아침 5시면 살을 빼려고 몸에 랩을 감고 그 위에 운동복을 입고 산에 올랐다.

방에서는 아무 대본이나 잡고 벽을 향해 부르짖고 부르짖었다. 친구와도 연락을 끊었다. 이왕 시작한 것 끝장을 봐야지 싶어서였다.

코디 정주연(27)씨는 "동생이지만 가끔씩 어쩌면 저렇게 독할까 싶어요. 핸드폰이 있는데 한달에 한 통 정도 전화가 올까말까해요" 라고 살짝 귀띔해준다.
그날은 홍콩V채널 방송 두 주분 녹화가 있었다. 오후 1시부터 6시간 넘게 계속됐다.

두번째 녹화라 익숙하지 않았는지 실수가 잦았다. 새 드라마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컨디션이 그리 좋지 않아 보였다. 아직 완전한 프로가 되지 못한 까닭일 것이다.

7시 넘어 겨우 녹화를 마쳤다. 8시에는 MBC에서 새 드라마 대본 연습이 이어진다. 대선배들이 다 모이는 첫날이기도 했다.

연습장소까진 차로 20분. 신인이라 늦으면 안된다며 밥도 먹지 않고 출발하려했다. 그러나 점심도 제대로 못 챙겼으니 10분 안에 밥을 먹자고 주위에서 말렸다.

그렇게 해서 옷 갈아입는 사이 매니저가 미리 시켜 놓은 알탕과 초밥을 우리는 정말 10분 안에 먹어치웠다. 그리고 부랴부랴 차에 올랐다.

첫날 만난 이미지가 이랬다. 흡사 '담쟁이 치렁치렁한 벽돌담을 오르는 초록 달팽이' 같았다.

# 둘째 날

소나기가 지나간 남산은 싱그러웠다. 푸른 나뭇잎들이 하늘거리며 물방울을 떨어뜨렸고 검은 구름 사이로 햇살이 잠시 얼굴을 내민다.

산비둘기가 낮게 날았고 아이들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남산으로 향한 것은 답답한 빌딩을 벗어나 보자는 일행의 제의에 따른 것이었다.

"남산에 처음 왔어요. 와- 좋네요. "

바쁜 일정 탓에 그녀에겐 모처럼의 '외유' 였다. 남산 타워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탈 쯤 사인을 해달라는 중.고생 팬들에게 둘러싸여 잠시 '곤욕' 을 치르곤 전망대에 닿았다.

서울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쪽 삼각산 밑으로 청와대가 자리하고 그 밑엔 고층빌딩 가득한 도심. 남쪽으론 굽이 치는 한강이 길게 누워있다.

"땅에 있으면 잘살고 못사는 표가 확 나잖아요. 근데 올라와서 보니 집이 다 똑같아 보이네요. 참 그러고 보면 하늘에서 우리 아웅다웅 하고 사는 거 보면 참 우스울 거예요. "

서울 제일 높은 곳에 오니 지원은 유난히 말이 많아진다. 휴게소에 들러 음료수 한 잔을 마시려 했다. 콜라를 시키려는 순간, "저는 맥주 마실래요" 라는 지원. 맥주 한 병을 시키고 나머지는 콜라를 주문했다.

"남자가 약한 모습을…, 시원하게 한 잔 쭉 마시면 좋잖아요. " 한 잔을 쭉 비우고는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그 중 지금도 뇌리를 스치는 한마디가 있다.

"있잖아요. 우리 답답한 콘크리트를 벗어나 보자고 이리로 왔죠. 근데 잘 보세요. 올라와보니 남산은 도시에 둘러 쌓인 섬이에요. 이건 탈출이 아니라 다시 감금이잖아요" 라고. 지원의 말처럼 남산에서 두 가지를 느꼈다.

아등바등 사는 것을 하늘에서 보면 참 웃길 거라는 것, 그리고 혹시 일탈을 꿈꾸지만 그게 오히려 자신을 옥죄는 것은 아닌지. '풋풋한 이미지에 강하면서 우수 어린 눈빛을 가진 하지원. 올라온 지 한 시간쯤 지나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옮겨야 했다.

내려오는 길, 나뭇가지가 길가까지 드리운 꼬불꼬불한 남산길은 푸른 녹음 탓인지 어지럽기보다 유난히 맑기만 했다.

영화배우 하지원 고교때 '왕따' 경험

하지원은 1남 3녀 중 둘째다.

서울에서 고1까지 다녔고 그때 전학을 가 지금은 수원에 살고 있다. 당시 아버지가 서울에서 도자기 관련 유통업을 하다 실패해 한때 속앓이를 심하게 하기도 했다.

전학간 학교는 지원을 더 괴롭혔다. 전학간 학교에서 "네가 그냥 싫어" 라는 급우들 속에서 지냈다. 왕따였다. 전학생이라는 것과 외모가 다소 튄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지금 짐작한다.

그런 속에서 찾은 돌파구가 연기였다. 우연히 아는 사람의 소개로 고 3때 지금의 매니저 장용대(37)씨를 만났고, 그래 연기를 해보자 마음먹은 후 지금까지 동고동락하고 있다.

〈가위〉의 안병기 감독은 "행동이나 외모는 신세대적인 매력을 갖고 있으면서도 연기하는 자세는 조감독 시절 봤던 선배 배우들처럼 예의바르고 배려가 깊은 연기자다. 그리고 작업에 매달리면 중간에 포기하는 법이 없는 독한 면도 가지고 있다" 고 말한다.

영화 〈진실게임〉을 찍으며 단 한번도 미간을 찌푸리지 않았던 안성기씨의 모습을 보며 왜 그가 국민배우로 불리는지 알았다는 지원은 자신도 그렇게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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