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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노무현 해빙 무드에 방심, MB 접촉 제한 … 대북정보 먹통 불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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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정보당국의 대북 정보력 부재가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정보를 제때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이 20일 국회 정보위에서 김정일의 사망 시점과 장소에 의혹을 제기하는 내용의 발언을 한 데 대해 청와대 내부에서도 불편한 기류가 역력하다.

올해 5월 4일 구글어스 위성사진이 촬영한 평양 용성역의 모습. 평양 북부 용성구역에 있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1호 관저(오른쪽)에서 왼편 야산을 넘어 김위원장의 특별열차를 위한 전용역사와 지하 철도시설이 보인다. 전용 역(왼쪽 아래)에는 16량의 특별열차가 서 있는 모습도 식별된다. 원세훈 국정원장은 20일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평양 용성역에서 16일부터 김 위원장의 사망 시각인 17일 오전 8시30분까지 열차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했었다. [정효식 기자]<사진크게보기>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1일 “김정일 사망 이후 청와대는 상황 관리를 위해 극도로 신중한 자세를 견지, 제한되고 통제된 메시지만 내보내고 있는데 정보 수장이 왜 불필요한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국회 정보위원장인 한나라당 권영세 의원은 사실상 원 원장의 교체를 요구했다. 정보위 민주당 간사인 최재성 의원도 원 원장이 북한의 발표 내용과 다른 입장을 밝힌 것을 ‘정보 장난’으로 규정하고 “책임을 면키 어려운 수준의 장난을 한 것”이라고 몰아붙였다.

 원 원장이 구설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정보위에서 “연평도 사건에 앞서 북한의 서해 5도 공격 징후를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말해 청와대를 곤란에 빠뜨렸었다. 실제론 일일보고에 “서해에서 북한군 군사활동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 줄 걸치고 간 정도였는데도 그렇게 발언한 것이다. 올 들어서도 국정원 직원이 T-50 공군 훈련기 구매 협상을 위해 방한한 인도네시아 특사단 숙소에 침입했다 발각되자 관리 책임론이 일었다.

 국정원은 왜 중대 시기마다 코너에 몰리는 걸까. 원인을 진단하는 시각은 여러 갈래다.

 먼저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간 남북 해빙 무드로 정보기관의 대북 감시망이 헐거워져 정보 수집력이 떨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노무현 정부 때 미국과의 껄끄러운 관계가 이어져 한·미 간 대북 정보 공유가 제대로 안 됐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동향을 감시하는 데는 첩보위성과 첨단 감청장비를 갖춘 미국의 협력이 중요하다”며 “미국이 실시간으로 주느냐, 하루 이틀 뒤에 주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반대되는 주장도 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 접촉과 교류가 제한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는 것이다. 민주당 박지원 전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는 북한과 핫라인을 몇 개 유지하면서 부단히 대화해 왔다”며 “이명박 정부 들어 이런 것이 전부 단절돼 북한 정보 파악이 늦어지지 않느냐 생각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우리가 취한 5·24조치로 북한 방문과 북한 주민접촉이 차단돼 ‘휴민트(Humint, 인적 정보망)’의 활동이 제한됐다는 것이다. 대북 비선라인의 단절도 같은 맥락에서 지적된다.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국정원은 대북지원 시민단체나 기업인에 기대기도 했는데, 비밀 보장도 어려울 뿐더러 뒷말이 무성했다.

 북한의 대남 유화파의 입지가 위축된 것도 우리의 정보력 약화에 영향을 줬다는 분석도 있다. 그동안 남북관계를 주도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입지가 좁아졌고 김영철 정찰총국장 등 강경파가 남북관계를 주도하면서 대북 휴민트의 활동반경이 더욱 좁아졌다는 것이다. 김양건 통전부 부장과 원동연 부부장 등이 여러 차례 남북회담의 실패로 활동에 제한을 받는 바람에 대북채널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웠다고 한다. 전직 정보기관 고위 인사는 “원인이 무엇이든 정치논리에 따라 대북 정보망에 이상이 생긴 것이라면 하루빨리 복원하기 위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글=이영종·고수석 기자
사진=정효식 기자

◆휴민트(HUMINT·human intelligence)=정보원이나 내부 협조자 등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얻은 정보 또는 그러한 정보 수집 방법. 영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휴먼(human)’과 ‘정보’ 또는 ‘첩보’를 뜻하는 ‘인텔리전스(intelligence)’의 합성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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