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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기 눈물과 앙다문 입술이 격하게 토해내는 통곡보다 더 애절하고 비통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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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다. 사진 전문잡지 라이프(LIFE)에 실렸던 것이다. 194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서거 다음 날, 그레이엄 잭슨이라는 흑인 해군 상사가 마을회관 앞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아코디언으로 ‘고잉 홈(Going Home)’을 연주하고 있는 장면이다. 복받치는 슬픔을 힘겹게 억누르고 있는 그의 볼을 타고 한 줄기 눈물이 흘러내린다. 울음을 참으려고 앙다문 그의 입술이 너무 비통해 다른 추모객들의 표정을 무심하게 만든다. 움직임도 거의 없고 애절한 신세계 교향곡 2악장 테마도 들리지 않건만, 이만큼 사무치는 아픔을 절절하게 잡아낸 사진이 또 있을까 싶다.

 절제된 슬픔만 감동적인 게 아니다. 격정적 토함으로 표현되는 슬픔도 있다. 고대 그리스의 극작가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인류 최초의 비극으로 자리매김되는 이 작품에서 아이스킬로스는 페르시아왕 크세르크세스 1세의 아픔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이 배경이다. 크세르크세스는 자신의 대함대가 한 줌도 안 되는 그리스 함대를 고양이 쥐 갖고 놀 듯 하는 걸 스펙터클하게 즐기기 위해 바닷가 높은 언덕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 페르시아 대함대가 살라미스 해협의 좁은 목에서 맥을 못 추고, 날렵한 그리스 소형 갤리선들의 먹잇감이 돼버리는 게 아닌가.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대규모 해전인 이 전투에서 그리스는 40여 척의 배를 잃은 반면 300척이 넘는 페르시아 전함이 침몰하고 말았다.

 크세르크세스는 생각보다 더 스펙터클한 장면을 대하고는 자신의 옷을 갈기갈기 찢으며 울부짖는다. 그 울음소리가 극적이다. “오토토토토이(Ototototoi).” 우리말로 “아이고, 아이고”로 번역할 수밖에 없을 이 소리는 원초적인 통한의 표현일까. 자신을 위해 산 채로 수장되는 병사들을 보며 짐승처럼 울부짖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니 말이다.

 지도자를 잃은 북한 주민들이 통곡하는 모습을 보며 떠오른 이 두 장면은, 아무리 붕대를 덧대도 송골송골 배어나는 핏방울 같은 슬픔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하게 한다. 크세르크세스의 울부짖음에는 아무래도 과장이 느껴진다. 자신의 과장이라기보단 작가의 왜곡이다. 살라미스 해전에 직접 참전했던 그리스 병사로서 아이스킬로스에게 크세르크세스의 패퇴는 제우스의 징벌이자 정의의 승리였던 까닭이다.

 북한 주민들의 ‘아이고’에서도 어쩐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일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는 것이 유리해선지, 아니면 내게 유리한 사람이 사라져선지 남의 집 초상에서 자기 신세 한탄하며 우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다.

이훈범 문화스포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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