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인 대학생 자녀 위한 기숙사 ‘서울 농협장학관’서 생활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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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등록금이 비싸 아우성이다. 설상가상으로 기숙사비까지 만만치 않다. 서울지역 주요 사립대학들의 민자 기숙사비(4개월 기준)가 130만~160만원에 이른다. 학비의 3분의 1에 이를 정도다. 팍팍한 살림으로 주름이 깊어진 농촌에서, 물가 높기로 소문난 서울로 온 대학생들에겐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이들을 위해 농협재단이 지난 2월 서울에 첫 기숙사인 농협장학관을 열었다. 기숙사비도 1학기(4개월) 기준 60만원(2인실 기준, 식비 포함)으로 저렴하다. 이곳에 입주한 전과 후, 입사생들의 서울생활은 어떻게 변했을까. 지난 16일 농협장학관을 찾아갔다.

숙식 부담 더니 성적 향상, 취업준비 집중

1 농협재단이 올해 2월 서울 우이동에 문을 연 농협장학관에서 박정원(오른쪽)씨가 방을 소개하고 있다. 2 농협장학관 내 휴게실 3 전산실 전경. [사진=최명헌 기자]

“남은 돈을 자기계발에 투자할 수 있게 됐어요.” 박정원(경희대 영어학부 4)씨는 농협장학관에 입주한 뒤 달라진 서울생활을 이렇게 설명했다. 특히 “마음의 여유가 생겨 학업에 집중할 수 있게 된 점”을 우선 꼽았다. “자취할 땐 1만원으로 식비를 어떻게 해결할까 고민했다면 지금은 보고 싶은 책을 사볼 수 있게 된 게 가장 좋아요.” 숙식비 마련에 쫓기던 옛날이 눈에 아른거렸다.

경북 청도에서 온 박씨는 신입생 땐 대학기숙사에 머물다가 군에 다녀온 뒤엔 자취를 하다 올해 초 이곳에 입주했다. 대학기숙사에선 한 방을 4명이 나눠 썼다. 기숙사비는 한 학기에 90만원. 4명의 생활과 성격이 서로 달라 기숙사 생활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샤워실과 화장실이 기숙사 공동사용이라 바쁜 등·하교 시간대엔 마음 놓고 사용하지도 못했다.

자취할 땐 월세 45만원과 식비를 포함한 생활비가 100여만원 들었다. 월셋방은 공간이 부족해 짐은 풀 엄두도 못 냈다. 식사도 건강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주말엔 한 끼만 먹고 지낸 적도 많았다.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그는 농협장학관에서 영어학과 언론정보학을 복수전공하며 훗날 언론인을 꿈꾸고 있다. 숙식이 해결되면서 학업에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월세방 3배 정도 크기의 방을 두 명이 함께 쓴다. 샤워실과 화장실도 딸려 있다. 한 달 식비 10만~15만원이면 하루 세끼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숙식비가 전보다 3분의 1이 줄었다. 성적도 지난해보다 올라 전액 장학금도 받았다. “기업채용설명회나 명사초청특강 등 농협재단이 취업에 필요한 행사도 마련해 주고 있어요. 특히 부모님의 걱정이 줄어든 점이 가장 큰 도움이죠.”

안전하고 깨끗해 여학생들 안심

올해 서울여대에 입학한 새내기 김수연(중어중문학과 1)양은 전북 전주에서 왔다. 하지만 결정과정이 쉽지 않았다. 딸을 연고도 없는 서울에 홀로 보내기가 부모로서 쉽지 않았다. 대학기숙사만 믿고 입학했지만 타지에서 온 입학생들과의 입주선정 추첨에서 떨어졌다.

“낯선 서울 하늘 아래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당시엔 막막하기만 했어요. 입학식 때까지 방을 찾느라 부모님과 고민했어요. 아버지와 언니가 서울에 와 찜질방에서 먹고 자며 함께 방을 구하러 다녔어요.”

그러나 방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원룸은 월세 30만원, 화장실이 딸리면 45만원으로 뛰었다. 방 크기는 혼자 누울 정도가 전부. 시간에 쫓겨 이마저도 아쉬웠지만 방범시설과 소방시설이 허술해 부모가 입주를 반대했다. 특히 여학생 혼자 지내야 하는 탓에 걱정이 앞섰다. 대학 주변을 알아봤지만 보증금이 턱없이 높아 엄두를 못 냈다.

그러다 이곳 농협장학관을 알게 돼 찾아오게 됐다. “등교시간이 1시간 정도 걸리지만 깨끗하고 안전하게 지낼 수 있어 오히려 걱정을 덜게 됐어요. 농협장학관에서 생활하니 부모님이 마음을 놓으시더라고요.”

김양은 농협장학관 내 독서실을 애용한다. 수업만 끝나면 바로 이곳으로 와 공부에 몰두한다. “시험 땐 대학도서관 자리를 잡으려고 경쟁하지 않아도 돼 편해요. 밤 10시면 도서관이 문을 닫는데 이곳은 24시간 열려 있어 마음 놓고 공부할 수 있어요. 여학생이 밤에 이동하느라 걱정할 필요도 없고요. 게다가 같은 전공을 하는 같은 방 선배가 공부에 도움을 줘 성적도 많이 올랐어요.”

글=박정식 기자
사진=최명헌 기자

24시간 환한 독서실 … 자취 때보다 숙식비 줄고 공부 의욕 쑥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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