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 '템피스트 프로그램'의 비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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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e-메일을 누군가가 훔쳐 볼까봐 걱정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아직 자신이 보고 있는 컴퓨터 화면을 길 건너에 있는 사람이 똑같이 재현해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전화선이 없어도 어느 컴퓨터 화면에서 나오는 독특한 무선주파를 주변 사무실 ''방향'' 안테나를 통해 잡아 영상신호를 확장하면 그 컴퓨터 화면에 나오는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컴퓨터 앞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아니면 어떤 비밀문건을 작성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미 국방부와 정보 기관은 이같은 스파이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오래전 부터 ''템피스트 프로그램''이라는 이름 아래 필요한 조치를 극비리에 진행시켜 왔다. 템피스트(TEMPEST)는 순간전자장파동표준(Transient Electromagnectic Pulse Standard)의 약어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보고 있는 컴퓨터 화면이 정탐의 대상이 된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는 것 처럼 템피스트 프로그램 자체도 베일에 쌓여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7일 정부기관 처럼 많은 비밀을 갖고 있고 그 비밀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는 기업 조차도 사무실내에 켜져 있는 컴퓨터의 화면내용이 길 건너편에서 그대로 재현될 수 있는 것에 대해 잘 모르고 있으며 더구나 템피스트 프로그램의 존재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템피스트 프로그램이 베일에 쌓여 있는 것은 정부기관들이 관련 제조업체 등에 대해서 일체 이 장비를 일반에게 파는 것을 금지하는 등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장비의 국외 유출은 금지돼 있다.

지난해 7월 미 연방수사국(FBI)은 비디오수신점검장치로 위장해 원거리 컴퓨터 감시장치를 미국 밖으로 유출하려던 이스라엘인을 체포했다. 미국 기업인 코덱스 데이터 시스템은 다른 데는 절대 팔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미 국방부에 컴퓨터 화면이 무선주파를 외부에서 감지될 수 있을 정도로 유출시키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스캐너를 공급하고 있다. 이 스캐너는 1대 가격이 2만달러 수준이다.

버지니아주에 있는 BEMA사는 역시 일반에 판매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동과 니켈로 도금된 특수 천으로 만들어진 컴퓨터 장비 보호용 이동천막을 개당 3만달러에 공급하고 있다. 동과 니켈은 컴퓨터에서 방출되는 무선파장을 차단하는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회사의 로버트 토머스 사장은 올해 국무부 외교보안국에서 10개를 주문하는 등 지난해에 비해 더 많은 특수천막을 정부기관에 공급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외교보안국은 전세계에 주재하고 있는 미국대사관을 보호하는 업무를 하고있는 부서로 이 천막의 용도에 대해서는 비밀사항이라고만 말했다.

코덱스 데이터 시스템의 한 관계자는 미국의 대형기업 또는 중국 회사로부터 컴퓨터 화면 모니터 시스템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를 구하는 연락이 오고 있으나 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 기관에 컴퓨터 방어 관련 장비를 공급하는 템피스트사(社)의 루이스 네코사장도 기업의 보안 관계자들이 간혹 자사 장비에 대한 질의를 해오고 있으나 비밀사항으로 분류돼 있어 구체적으로 얘기할 수 없다고 답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문제는 이 장비가 방어적인 측면에서는 첩보행위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쓰여지는 것이지만 공격적인 측면에서는 상대방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쓰여진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미국 기업 중에 방산업계 일각을 제외하고는 정부의 템피스트 프로그램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기업은 거의 없는 것 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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