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진석의 스포츠 프리즘 ⑤ 8m슛 4점 하프라인슛, 5점 김정일이 만든 농구 룰 한국 코트서 볼 뻔했는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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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죽었다. 그의 죽음을 두 가지 시선으로 바라본다. 함경북도 출신 실향민의 아들로서, 스포츠 기자로서. 기자의 눈에 김정일은 흥미롭다. 특히 그는 ‘북한 프로스포츠의 아버지’라고 불릴 만하다. 북한에 무슨 프로스포츠냐고? 북한 용어 사전에 ‘태풍’이라는 프로농구팀이 등장한다. 창설한 해는 한국프로농구가 출범한 1997년이다. 사전의 설명은 이렇다.

 ‘북한의 첫 프로농구팀. 97년 사회안전부 소속 압록강체육선수단의 남자농구선수단을 프로팀으로 전환했다. 팀명은 김정일이 직접 붙인 것으로 전해진다. 압록강체육선수단 소속 여자팀도 프로로 전환했다. 팀명은 ‘폭풍’이다. ‘번개’ ‘대동강’이라는 팀도 있다. 한편 북한은 92년 7월 프로권투협회를 발족했고, 95년 4월에는 처음으로 국제프로레슬링 경기를 열었다’.

 97년의 일이다. 한국농구연맹(KBL)의 김영기 전무(당시)와 ‘한국에 프로농구팀 몇 개가 적정한가’를 놓고 대화했다. 김 전무는 열 개로 제한한다고 했다. 나도 열 팀이 현실적이라고 봤다. 그러나 ‘열한 번째 구단’을 정관에 명기하자고 제안했다. KBL의 명예회원으로서 북한을 연고지로 하는 ‘제11 구단’에 통일을 향한 열망을 담고 싶었다.

 99년에 ‘통일농구대회’가 열렸다. 현대-기아연합팀(남자)과 현대산업개발(여자) 팀이 9월 28∼29일 평양에서, 12월 23∼24일 잠실에서 북한 남녀 팀과 경기했다. 현대 남녀 팀은 평양에서 북한 팀에 모두 졌다. 잠실에서는 여자팀이 86-84로 이겼다. 남자팀은 또 86-71로 졌다. 북한 선수들은 한국 심판에 불만이 많았다.

 김정일은 우리 농구에도 영향(?)을 주었다. 2005년 12월,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이 ‘김정일 룰’을 도입한다는 뉴스가 떴다. 북한 농구처럼 4점슛·5점슛 제도를 사용한다는 내용이다. WKBL 김원길 총재는 “8m 거리에 4점슛 라인을 긋는 게 좋겠다”는 말도 했다. 하프라인 너머에서 던져 넣으면 5점이다. 물론 김정일이 지시해 만들었다는 이 규칙은 도입되지 않았다.

 독재자는 스포츠를 좋아하는 공통점이 있다. 최소한 장려한다. 스포츠 학자들은 제5공화국이 프로야구·프로축구·민속씨름 등을 출범시킨 일을 우민화 정책인 ‘3S(Screen, Sport, Sex 또는 Speed)’의 일부로 본다. 김정일도 나름대로 스포츠에 공을 들였다. 결과에 만족할지 모르겠다. 특히 ‘해방해야 할 대상’인 한국의 스포츠와 비교해서.

허진석 스포츠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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