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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 타는 87세 이근호씨 “최상급자 슬로프가 내 놀이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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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실버 드림 스키클럽 회원들이 지난 12일 대관령 평창군 용평리조트 스키장에서 모였다. 앞줄은 임휘재(75·오른쪽)씨와 윤덕용(72)씨. 실버 드림 회원은 매일 아침에 모여 스키를 즐긴다. [사진=최재영 프리랜서]

지난 12일 오전 강원도 평창군 용평리조트 스키장. 최상급자 슬로프에서 3명의 남성이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당연히 20~30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들이 고글을 벗는 순간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모두 얼굴에 깊은 주름이 있는 80대였다. 연장자인 이근호(87·서울 서대문구)씨는 “눈이 오길 기다렸다. 스키 덕분에 건강하다. 다리가 움직이는 한 계속 탈 계획”이라며 웃었다. 이춘광(85·서울 여의도)·백수목(80·서울 광진구)씨도 이근호씨와 20년간 매년 스키를 즐기고 있다. 이들의 스키복에는 국제스키그룹이 인정한 ‘80+’ 마크가 있다. 80세 이상이라는 뜻이다. 백씨는 “해외에서 스키를 타면 마크를 보고 외국인이 와서 인사한다”고 자랑했다.

동호회원 임휘재씨 “내 스키 경력은 50년” 

국제스키그룹이 80세 이상 스키어에게 발급하는 ‘80+’ 마크. 90세 이상은 ‘90+’다. 미국에는 ‘100+’도 있다고 한다.

시니어(50세 이상) 스키 인구가 늘고 있다. 대한스키지도자연명 박순진 이사는 “1975년 국내에 리프트가 있는 현대적 개념의 스키장(용평리조트)이 개장했다”며 “이때 스키를 시작한 젊은 층이 시니어가 됐다”고 설명했다.

 시니어 스키 동호회도 전국에 3~4개 운영 중이다. 활발하게 활동하는 곳은 ‘대관령 실버 드림(SILVER DREAM) 스키클럽’. 최연소 회원이 50대이고, 최고령은 75세인 임휘재(강원도 평창군)씨다. 실버 드림은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를 기원하며 2002년 발족했다.

 실버 드림 추교원(60·강원도 평창군) 부회장은 “회원은 80여 명이다. 스키 경력은 10년에서 수십 년에 이른다”고 말했다. 12일 오전에도 약 20명의 회원이 진회색 유니폼을 입고 설원을 누볐다. 임휘재씨는 “피나무를 깎아 만들어 타던 스키 경력을 합치면 50년쯤 된다”고 말했다.

 실버 드림의 홍일점인 홍인자(68·서울 서초구)씨는 중2인 손자와 함께 최상급자 슬로프에서 나란히 내려오는 걸 즐긴다. 회원 김길용(56·강원도 평창군)씨는 스노보드 매니어다. 그는 “S자를 그리며 슬로프를 내려오다 보면 스트레스가 날아간다”고 말했다.

 실버 드림 회원은 대한스키협회가 인정한 심판으로 활동한다.

스키 타기 전 반드시 스트레칭 해야

시니어 스키어가 늘며 부상자도 증가하고 있다. 원주의대 이영희(재활의학·스포츠의학) 교수는 “60~70대의 민첩성은 20대의 65%, 유연성은 68%, 근력은 82%로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국내 스키장 안전사고는 2000년 전까지 1000명당 3~4명으로 보고됐지만 최근에는 6~9명으로 뛰었다”며 “특히 전체 스키 부상자 중 50대 이상 비율이 1%에서 8%로 급증했다”고 말했다.

 미국 솔트레이크시티 스키장의 연구 결과 65세 이상이 다른 사람과 충돌하면 부상을 입는 경우가 그 이하 연령보다 두 배 많았다.

 시니어 스키어들의 부상 유형은 젊은 층과 차이가 있다.

대부분 골절로 이어진다. 대한스키지도자연맹 은승표(정형외과·스포츠의학 전문의) 의무이사는 “20~30대는 뼈가 단단해 인대가 끊어지거나 탈골이 많다”며 “시니어는 골다공증 때문에 정강이뼈와 무릎뼈가 부러지거나 으스러진다”고 말했다.

 다양한 만성질환도 부상 위험을 높이는 복병이다. 이영희 교수는 “당뇨병이 있는데 활동량이 늘면 저혈당이 와 스키를 타는 도중 실신할 수 있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천식이 있으면 찬 공기 때문에 천식 발작 위험이 있다.

 은승표 이사는 “고혈압 환자가 과도하게 운동하며 추운 스키장에 장시간 노출되면 혈관이 수축하고 혈압이 상승해 심장마비나 뇌졸중이 발생할 수 있다”며 “만성병이 있으면 의사와 상의해 운동량을 조절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충돌 사고 나면 골절로 이어져

국내에 약 10명밖에 없는 80대 스키어인 이근호(87·사진 왼쪽)·이춘광(85)·백수목(80)씨.[사진=최재영 프리랜서]

실버 드림 회원들은 아직 큰 부상이 없다. 스키 경력을 과신하지 않고 안전수칙을 따르기 때문이다. 체력 관리에 노력한다.

 임휘재씨는 “스키를 타기 전 스트레칭으로 충분히 몸을 푼다”고 말했다. 스키장에 들어서면 안전을 위해 헬멧과 고글을 착용한다.

 이근호씨 등 80대 스키어 3인방은 사람이 붐비는 주말은 피한다. 임씨는 스키 시즌이 끝나면 산악자전거를 탄다. 집에서 약 20㎞ 거리에 있는 도암댐까지 굽이진 길을 달리며 체력을 유지한다. 홍인자씨는 인라인스케이트를 즐긴다. 그는 “균형감각과 다리 근력을 키워 줘 스키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은 이사는 “부츠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키·체중·발 사이즈를 고려해 스키에 고정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렇게 하면 스키 골절 위험을 90%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황운하 기자 , 사진=최재영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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