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트당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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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호 29면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해 지난 9개월 동안 5000명 넘게 학살한 시리아는 일당독재 국가다. 최고권력기구는 바트당이다. “바트당이 국가와 사회를 지도한다”고 헌법 제8조에 못 박아 놨다. 당의 구호인 ‘단결·자유·사회주의’는 곧 국가의 모토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은 바트당 지역위원회에서 간선으로 뽑는다. 대통령은 바트당 사무총장을 겸임한다. 바트당과 10개 허수아비 정당과의 허울뿐인 집권 연정(국민진보전선)의 지도자도 겸임한다. 시리아 바트당은 1963년 군사쿠데타 이후 지금까지 48년간 집권해 왔다.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바트는 아랍어로 재생(再生)을 뜻한다. 1940년대 지식인들이 강대국에 눌린 후진 사회를 갱생하자는 이상(理想)에서 창설했다. 무슬림 소수파인 알라위파 출신 철학 교사 자키 알아르수지(1899~1968), 시리아 정교 기독교도인 역사 교사 미셸 아플라크(1910~89), 수니파 무슬림인 수학 교사 살라 알딘 알비타르(1912~80)가 공동 창립자다. 알아르수지가 제창한 아랍민족주의에 프랑스 소르본대 유학생 출신인 아플라크와 알비타르가 들여온 사회주의 사상을 결합했다.

원래 아플라크와 알비타르는 프랑스공산당을 추종했지만 현지 사정을 무시하고 민족해방보다 계급투쟁에 치중하는 데 염증을 느끼고 사회주의를 아랍화했다. 바트주의는 아랍의 전통 가치를 존중했다. 수니·시아·알라위 등 모든 무슬림 종파와 시리아 정교를 비롯한 기독교까지 모든 종교 전통을 인정했다. 농지 등 소규모 사유재산과 상속 등 사회적 전통도 수용했다. 대신 은행·대기업·신문·방송·철도·항만 등 덩치 큰 국가기간사업은 국유화했다. 이런 부문에 제국주의 세력의 침투를 막고 그 이익을 개발사업에 쓰면 아랍사회가 발전할 것으로 봤다. 또 같은 언어를 쓰는 아랍세계가 연대해 제국주의에 대항하자고 역설했다. 사회주의의 아랍식 절충이었고, 아랍 방식의 진보사상 도입이었다.
전통과 사유재산을 보장하면서 외국인·부호가 보유하던 대기업만 국유화해 이익을 나눠주겠다니까 서민들은 열광했다. 바트주의는 50~70년대 아랍세계를 풍미했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선 바트주의자들이 쿠데타로 집권했다.

하지만 어떠한 이념도 세월이 지나면 퇴색하게 마련이다. 바트주의는 아랍사회를 발전시키지 못하고 독재의 도구로 변질됐다. 국유화됐던 기업은 독재자와 가족들의 개인 호주머니로 변했다. 모든 방송사·신문사가 국영기업이 되면서 비판이 사라졌다. 국민은 가난에 허덕여도 독재자는 권력과 돈줄을 한 손에 쥐고 휘두르는 구조다. 70년 시리아 대통령이 된 하페즈 알아사드(1930~2000), 79년 집권한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1937~2006)이 모두 바트주의를 앞세워 철권통치를 했다. 하페즈는 바트당을 사당(私黨)체제로 만들어 아들인 바샤르(46)에게 권력을 세습했다. 바샤르는 국영기업의 돈줄을 바탕으로 군대는 물론 샤비하(악귀라는 뜻)라는 사설 무장세력까지 지원해 독재와 부패에 항의하는 국민을 학살하고 있다. 바트주의의 비극적인 말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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