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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보이지 않는 손’ 원래 없는 것 … 주류 경제학자 질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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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시장의 배반
존 캐서디 지음
이경남 옮김, 민음사
468쪽, 2만5000원

아직 반성의 시간이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기에 세계경제 터널은 이렇게 길고 컴컴한 것일까. 터널 입구는 2008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이었던 듯하다. 『시장의 배반』(원제 How Markets Fail)은 그 불길한 파산이 있던 직후인 2009년 발간됐다. 경제학자·경제기자로 활약하는 저자 존 캐서디의 기동성과 순발력이 엿보인다.

 캐서디는 경제학의 흐름에서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찾는다.

그는 18세기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까지 거슬러 올라가 경제학을 크게 ‘유토피아 경제학’과 ‘현실 경제학’으로 대별한다. 유토피아 경제학이란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을 움직인다고 한 애덤 스미스와 그 추종자들이 다듬어온 자유주의 시장 경제학이다. 이른바 ‘시장 성공’ 경제학이다.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양조장, 빵집 주인의 자비 때문이 아니라 그들 각자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라고 했다.

각자의 이기심이 작동하게 내버려두면 만사형통이란다. 경제상황이 좋을 때는 이게 문제될 게 없다. 대다수가 직장을 갖고, 건강하며, 쉴 집이 있는 한 시장은 참으로 신통한 요술방망이다. 미국 경제는 1980년 초 가파른 침체를 겪기도 했으나 이후 25년간 별 탈 없이 굴러갔다. 평온한 세상은 애덤 스미스의 상속인에게 유리했다.

 하지만 시장은 과연 성공만 하는 것일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조지 애컬로프가 밝혀낸 레몬 시장은 그렇지 않다.

레몬(lemon)에는 속어로 ‘불량품’이란 뜻이 있다. 딜러는 흠 있는 차부터 팔아 치우려고 할 것이고 소비자는 이걸 알기 때문에 값을 깎으려 든다. 딜러는 답답하겠지만 결함 없는 차라는 걸 증명하기 어렵다. 그래서 제값을 받기 어려우니 멀쩡한 차는 미리 빼돌린다. 결과적으로 중고차 시장은 레몬만 남는다.

모두 합리적으로 행동하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면 공동의 선(善)으로 나간다는 자유시장 가설은 중고차 시장뿐 아니라 환경·의료보험 등의 분야에서도 맥을 못 춘다.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손은 원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안 보이는 것이다.

 경제학자의 편식도 위기의 원인이라는 책의 해제는 주류 경제학자를 향한 또 다른 질타다. 시장실패 분석과 치료의 경제학이 없어서라기보다 시장성공의 경제학에만 쏠린 주류의 합창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애덤 스미스조차 규제에서 벗어난 신용 거품의 위험성을 충분히 지적했다.

 하지만 그의 신봉자들은 이를 간과했다. 20여 년 간 미 금융계를 쥐락펴락했던 앨런 그린스펀 전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주택 거품을 규제하지 않고 있다가 세계를 ‘고삐 풀린 금융 도박장’으로 몰아넣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그는 “어떤 기관이 시스템상의 위험에 빠졌다면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고 결론 맺듯 주장한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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