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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이 반한 한국 (40) 미국 화가 짐 칼흔의 한식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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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한국인 부부 덕에 불고기·잡채 맛봐

난 미국 아이오와주 토박이다. 아이오와주에는 한식당이 거의 없다. 그래서 쉰 살이 넘도록 한번도 한식을 먹어보지 못했다. 이런 내게 몇 년 전 새로운 이웃이 생겼다. 한국인 부부 존 김과 크리스티나 김이다. 크리스티나는 주말 저녁이면 우리 가족을 초대해 직접 만든 불고기·잡채·김치 등을 대접했다. 처음 맛본 한식의 세계는 그야말로 놀라웠다. 달콤하면서 짭짤한 불고기와 파스타보다 쫄깃쫄깃한 잡채와 종류별로 맛이 전혀 다른 김치의 향연이라니!

 한번은 뜨끈한 어묵을 먹는데 간장 소스가 평소와 달리 매콤했다. 크리스티나에게 물어보니 비결이 고추장이라고 했다. “고…츄…장?” 이 짜릿한 맛의 빨간 소스는 당장에 나를 사로잡았다. 크리스티나에게 고추장을 더 달라고 해서 어묵에 듬뿍 뿌려 먹었다. 식탐을 너무 부린 탓에 이날 밤 화장실을 수십 번이나 들락거려야 했지만 이후 난 고추장 매니어가 됐다. 스테이크나 피자·감자튀김에 케첩 대신 고추장을 곁들이거나 하루 한 끼 이상 상추쌈에 넣어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나를 위한 대회가 열린다며 출전을 권했다. 지난해 CJ 미국 본사가 개최한 ‘애니천 고추장 소스 햄버거 레시피 대회’였다. 나도 모르게 “이거야!”라고 소리쳤다. 오랫동안 화실에 칩거하며 그림만 그려온 나는 처음으로 붓 대신 칼을 들고 부엌에서 손수 메뉴 개발에 몰두했다.

 나는 어묵을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비린 맛이 가신다는 점에 착안해 고추장 양념 패티를 만들기로 했다. 다진 쇠고기를 고추장으로 버무리고 민트 잎·양파를 다져 넣은 뒤 라임 주스를 더했다. 패티를 그릴에 구울 때 바르는 글레이즈 소스에도 고추장을 주재료로 썼다. 같은 분량의 고추장·간장·케첩에 다진 마늘 약간과 꿀과 라임 주스를 가미하니까 크리스티나가 만들어준 두루치기 양념과 비슷한 맛이 났다. 고추장 양념 패티에 글레이즈 소스를 여러 번 발라가며 구웠다. 붉은빛이 은은하게 감돌면서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났다.

 드디어 시식 순간. 씹을 때마다 고소한 육즙과 매콤한 소스가 어우러져 환상적 풍미를 자아냈다. 매운맛을 조금만 순화하면 금상첨화겠다 싶어 마요네즈에 다진 마늘을 섞어 만든 아이올리 소스를 햄버거 빵에 발랐다. 느끼함을 덜고 독특한 향을 내기 위해 생강도 조금 다져 넣었다. 200개가 넘는 경쟁작을 물리치고 1등을 차지한 나의 고추장 소스 햄버거는 그렇게 완성됐다.

우승 티켓으로 가족과 한국서 미식 여행

“아~ 행복하다!” 지난 9월 내한해 직접 만든 고추장 소스 햄버거를 먹는 짐 칼흔. 그는 아내·아들과 함께한 2주간의 한국 여행 중에 34번째 결혼기념일을 맞았다. 그래서인지 표정이 유난히 밝아 보인다. 

1등 상품은 한국행 비행기 왕복 티켓이었다. 덕분에 올해 9월 28일부터 2주간 나와 아내, 아들 조슈아는 처음으로 한국 여행을 하게 됐다. 첫 한국 여행의 컨셉트를 ‘미식투어’로 정하고 서울·제주도·강원도를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산해진미가 넘쳐났다. 특히 제주도 선상에서 갓 잡아 올린 생선을 바로 회로 떠서 먹은 기억은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고추장 매니어답게 깻잎에 회를 얹어 초고추장을 듬뿍 뿌려 맛을 봤다. 초고추장은 고추장에 식초와 설탕을 넣어 새콤달콤했다. 샐러드 드레싱으로 좋을 것 같았다. 강원도 강릉에서 먹은 소갈비찜은 지금껏 먹어본 쇠고기 요리 중에서 가장 부드러웠다. 고기에 양념이 속속들이 잘 배어 있어 한 입씩 물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났다.

 한국에서의 1분 1초가 모두 소중하고 즐거웠지만 무엇보다 내가 개발한 햄버거 시연 행사를 진행할 때가 가장 뜻깊었다. 10월 4일 서울 쌍림동 CJ푸드월드에서 나는 진짜 셰프처럼 앞치마를 두르고 조리대 앞에 섰다. 완성된 햄버거를 내놓는 순간 한국인의 반응이 너무나 궁금했다. 잠시 뒤 “매콤해서 덜 느끼하다” “사먹는 것보다 맛있다” 등등 칭찬이 쏟아졌다. 감자튀김 대신 매운 기를 뺀 김치를 곁들여 낸 것도 반응이 좋았다.

 미국으로 돌아온 뒤부터 나는 한국에서 잔뜩 사온 식재료를 날마다 먹으며 궁리를 거듭하고 있다. 강릉에서 맛본 소갈비찜은 어떻게 재현할 수 있을까. 화가가 아닌 요리사 짐 칼흔의 한식 연구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정리=나원정 기자
중앙일보·한국방문의해위원회 공동 기획

짐 칼흔의 유화: 투우사(The Matador).

짐 칼흔(Jim Calhoun)

1954년 미국 출생. 미국 아이오와주 디모인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고 있다. 화가 활동에만 골몰하던 중 한국인 이웃집에서 우연히 고추장을 맛보고 고추장 매니어가 됐다. 지난해 CJ 미국 본사가 주관한 미주지역 ‘애니천 고추장 소스 햄버거 레시피 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다. 고추장의 화끈함이 깃든 그의 그림은 홈페이지(www.bluestreamstudio.com)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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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한 빨간 소스, 오 마이 갓 … ‘고추장 소스 햄버거’ 1등상 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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