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e-Biz에서도 앞서 달리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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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인프라입니다. 인프라는 약속과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인프라 스트럭처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리더 스스로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고부간에 웬 갈등?

어느 날 저는 중년의 신사가 또 다른 동년배로 보이는 사람과 차를 마시면서 나누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얘기는 고부간의 갈등이다 뭐다 하여 출가한 자식들이 본가(本家)를 멀리 하는 다른 여느 집과 달리 그분의 집은 거의 매주 며느리와 손자가 찾아오는데 대한 자랑이었습니다. 아들네 식구를 자주 볼 수 있다는 만족감이 역력해 보였습니다.

옆의 분이 참으로 부럽다는 듯 “거 참 좋은 일이네요. 어떻게 하면 그럴 수가 있어요?”라고 묻는 말에 그 분은 “다른 집들은 자식에게 효도하라고 그러고, 옆집에 사는 누구 누구는 어떻던데 자주 오면 안 되느냐, 용돈이 궁하다는 등등의 요구를 자식에게 하면서도 불만을 가지는데 우리는 아들네 식구가 오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은 항상 파출부를 부른답니다. 며느리가 와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지요. 우리 며느리는 우리가 파출부를 늘 두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휴일에 걔들 집에 있으면 남편과 애들 시중에 바쁘지만 우리 집에 오면 그럴 일이 없잖아요. 주말을 편히 쉴 수 있으니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지 말래도 오죠. 또 하나, 나는 며느리의 생일과 결혼 기념일엔 꼭 불러서 용돈도 주고 외출도 시켜요. 그러니 우리 부부의 기념일은 챙기지 말래도 챙겨요. 며느리가 오는 날만 기다렸다가 공짜라는 생각에 집안 청소 다 시키고, 밀린 빨래 다 하게 하고, 거기에다 용돈까지 달라고 하면 어느 며느리가 오고 싶어 하겠습니까? 이런 핑계 저런 핑계 안 갖다 붙일 젊은이가 세상에 몇 있겠어요?”

혹여 고부간의 갈등으로 고민하고 계신 독자께는 좋은 참고가 될 얘기입니다.

말을 강가에까지 끌고 갈 수는 있어도 억지로 물을 먹일 수는 없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말에게 억지로 물을 먹입니까? 말 등에 올라 타고 열심히 달려 보십시오. 아니면 열심히 일을 시키세요. 달구지를 끌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말은 일을 해주어서 좋고, 열심히 달린 말은 알아서 강가로 달려가 물을 먹어서 좋습니다. 열심히 달리고 일을 했으니 목이 마를 수밖에요. 마시지 않는 게 오히려 걱정이죠.

억지로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게 만드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인프라(Infra)입니다.

‘America’s Most Admired Companies’ 선정 과정에서 존경받는 기업들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최고경영자의 자질과 리더십을 꼽았습니다. 자신이 제시한 방향을 직원들뿐만 아니라 파트너(개인/회사)들로 하여금 억지로 따라오도록 하는 것보다는 회사가 가는 방향의 논리와 이유를 설득함으로써 모두가 진심으로 동참하도록 만드는 힘을 강조한 것입니다.

직원들의 충성심은 보수를 많이 주는 것만으로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직원들을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마십시오. 비전 있는 일을 하게 하면 방법을 찾게 됩니다. 스스로 갈증을 느낄 수 있도록 일을 안배하는 것이 바로 리더의 역할입니다. 두드리면 열릴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두드리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단, 리더는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강가, 두드릴 수 있는 문 같은 조직의 발전과 개인의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일할 동기를 부여해 주고 최선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또한 인프라입니다.

대신 인프라는 약속과 실천이 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인프라 스트럭처(Structure)를 갖추었다 하더라도 리더 스스로가 지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집합교육을 대신해 인터넷을 통한 원격 교육과정이 많이 서비스 되고 있습니다. 원격교육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는 측면에서 많은 장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확산 속도는 예상보다 빠르지 않아 보입니다.

필자의 회사에서 최근에 기업체 직원들을 대상으로 기업이 훌륭한 네트워크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으면서도 원격교육이 활성화되고 있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한 결과, 회사 내에서 원격교육을 수강하고 있으면 상사들이 업무가 한가한 사람으로 본다는 항목에 응답한 사람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였습니다. 집합교육을 위해 외부 파견은 하면서 회사 내에서는 반드시 업무만 해야 한다는 사고는 리더로서 버려야 할 인프라입니다.

부가가치가 있는 인프라에 투자하라

지금 테헤란로는 벤처의 빙하기로 접어들고 있다고 합니다. 투자자들은 제대로 된 수익모델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 돈을 갖다 부을 수 없다고 얘기하고 벤처 기업인들은 투자자들이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지 않는다고 불만입니다.

벤처들이 어려움을 겪는 이유야 여럿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인터넷기업을 움직이게 하는 인프라를 충분히 준비하고 있지 못한 것이 가장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금년 초에 이르기까지 절정에 달했던 벤처의 입문자들은 단순히 홈페이지 정도만 잘 꾸며 놓으면 되겠지, 고객의 정보를 잘 관리만 하면 될 것 아니냐, 고객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최소한의 채널만 구축하면 충분할 것 아니냐는, 막연할 정도로 인터넷 비즈니스를 쉽게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막상 비즈니스에 접근하고 보니 마케팅을 위한 수많은 정보, 주문의 처리, 배송 서비스, 품질 관리, 상품 검색, 재고 관리, 전자 거래 어느 하나 만만찮은 것이 없습니다. 이 외에도 수많은 것들이 인터넷 기업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인프라인데 어느 하나 제대로 갖추질 못했으니 어느 시간에 모든 것을 갖추느냐 하는 것입니다. 고객들은 이 모든 것을 갖추어 나가는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결국은 아주 기본적인 것을 갖추지 못하였으니 시작에서부터 난관에 처한 셈입니다. 빙산의 일각만 보고 뛰어든 것이 어려움을 자초하게 된 것입니다.

굴뚝산업을 대표하는 대기업들이 인터넷 비즈니스에 성공적으로 접근해 나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입니다. 필자의 경우도 대기업의 전산실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경험이 있지만 1980년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2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 동안에 대기업들은 MIS다, CIM이다, BPR이다 하여 기업의 프로세스를 정보시스템화 하는데 엄청난 투자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비즈니스라는 것이 그리 대단하거나 결코 새로운 개념이 아니거든요. 지금까지 체계적으로 구축해 놓은 정보시스템을 인터넷으로 연결해 나가는 것이 신생 기업에 비해 훨씬 적은 노력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고객정보 시스템을 CRM의 개념으로 접근시키고, 조달에서부터 납품까지의 모든 시스템을 SCM의 개념으로 연결시키기만 하면 인터넷 비즈니스는 이루어지는 것이고 인터넷 시대를 맞이하면서 고객들이 많이 방문할 수밖에 없도록 하는 인프라를 미리 준비해 놓음으로써 보다 높은 경쟁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신생 벤처기업은 이 모든 것 하나 하나를 다 구비해 나가야 하니 속도가 관건인 대기업을 따라잡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벤처는 이 모든 인프라를 스스로 구축하는 것보다 이미 만들어져 있는 좋은 모듈(Module)을 찾고 또 빨리 접목시킬 방법을 강구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필자가 근무하고 있는 사무실 인근에 TV 전파를 탈 정도로 된장찌개를 맛있게 하는 음식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줄을 서서 대기할 정도로 많던 손님들이 여름을 맞이 하면서 현저하게 줄어들었습니다. 한 대의 에어컨으로는 가스레인지에서 나오는 열기를 식힐 수 없음인지 식사를 하는데 여간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2백만원 정도를 더 투자하면 그토록 많던 손님을 놓치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어려운 시기라도 무조건적인 절약보다 부가가치가 있는 인프라를 위한 투자는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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