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박근혜 ‘비상대권’ 검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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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당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 전면에 등장할 경우 확실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전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11일 “전당대회 수임(受任)기구인 전국위원회가 당이 비상시임을 감안해 비대위원장에게 당 대표와 같은 권한(비상대권)을 주자는 것”이라 고 말했다. 그는 이어 “ 아예 전국위원회가 임기 1년 미만의 당 대표를 지명할 수도 있다”며 “박 전 대표를 ‘당 대표’로 지명하는 방법도 함께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의 당헌·당규에는 전당대회 소집이 곤란한 경우 전국위원회가 공석인 최고위원 선출권을 갖도록 했다. 유일한 전당대회 선출직이었던 나경원 최고위원이 이날 황우여 원내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사퇴하겠다”고 한 만큼 전국위원회에서 박 전 대표를 최고위원으로 선출하면 자연스레 박 전 대표가 당 대표가 될 수 있다.

 ‘디도스 파문’에 이어 이상득 의원 보좌관의 수억원대 금품 수수사건 등이 확산되면서 박 전 대표가 당을 이끌 경우 쇄신의 폭이 훨씬 커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재창당론에 미온적이었던 당 고위 관계자는 “ 이제 도저히 한나라당 간판으로 안 된다는 생각이 든다”며 “전면 재창당으로 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계의 한 의원도 “당을 재창당하고 새로운 인물들을 대거 수혈하는 것 외에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수 박근혜계는 비대위 체제를 내년 4월 총선 직후까지 유지하자는 입장이다. 이게 한나라당의 큰 틀을 허물지 않는 리모델링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 때문에 박 전 대표에게 전권을 부여하는 데 긍정적이던 일부 쇄신파가 반발하고 나섰다. 쇄신파 핵심인 정두언 의원은 “박근혜 체제의 사명은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신속히 재창당(당 해체 후 신당 창당)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총선 전에 재창당 작업을 진행하고, 신당으로 총선을 치러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계-쇄신파 연대’에 균열음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박 전 대표에게 힘이 쏠리는 것 자체에 대한 반발도 적지 않다. 이명박계 ‘재창당모임’ 소속 전여옥 의원은 “비대위로 가면 결국 ‘박근혜당’이란 좁은 카테고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 고 주장했다. 정몽준 전 대표도 성명을 내고 “전당대회를 열어 우리 모두 새롭게 태어나는 재창당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했다. 김문수 경기지사와 가까운 차명진 의원은 “비대위에 외부 인사가 의견을 낼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호·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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