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의 진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48호 31면

나의 ‘절친’ 교수가 교통사고로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인공호흡 장치에 의지하고 있다. 다리 근육은 빠져나가고 발목도 굳어버렸다. 참혹한 모습이다. 다행히 귀는 열려있어서 격려와 용기의 인사말을 알아듣는 것 같아 오히려 내가 위안을 받았다. 그의 아내와 아들도 함께 당한 사고여서 온 가족이 한꺼번에 큰 참화를 입었다.

군에서 휴가를 나온 아들은 치료 뒤 군에 복귀했지만 아내는 아픈 몸을 이끌고 부패 카르텔을 향한 싸움을 시작했다. 가해 버스회사는 버스 노선이 지나는 관할 경찰에 평소 손을 다 써놨기 때문에 어떤 사고도 겁내지 않는다고 한다. 쌍방 합의가 안 될 경우 법정으로 사건을 끌고가는 것을 염두에 두고 평소에 대비해 둔 방책이 있기 때문이다. 경찰 조서 작성에서부터 피해자는 검은 부패 카르텔의 커튼에 갇힌다. 버스회사, 경찰, 관련 행정기관의 3중 카르텔이다. 친구의 아내는 거대한 부패 철옹성에 맞서 외롭게 뛰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한 2011년 부패인지지수에서 우리나라는 이번에도 F학점을 받았다. 총 183개 국가 가운데 43위(10점 만점에 5.4점)에 그쳤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 호주, 홍콩, 일본, 대만 다음이다. 정치인 부패가 만연한 것처럼 보도되는 일본도 14위(8점)를 차지했다.

우리나라는 올해 무역규모 1조 달러, 세계교역 9위를 달성했다지만 투명성과 경제규모 사이에는 엄청난 지체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반(反)부패의 글로벌 스탠더드에선 여전히 후진국의 면모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명박 정부에서 부패의 그늘이 예전보다 더 짙어졌다는 것은 또 다른 아이러니다.

이 와중에 ‘부패 파수꾼’을 자임했던 검사들이 ‘스폰서 검사’ ‘그랜저 검사’에 이어 ‘벤츠 검사’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쇠락하는 것을 국민이 목도하고 있다. 이러다가 아파트 검사, 빌딩 검사, 땅 검사, 섬 검사가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벤츠에 깔린 검찰’이라는 세간의 비아냥보다는 부패 카르텔을 해체할 기회가 영원히 사라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에 검찰은 더 긴장해야 한다. 1993년 브레이크 없는 벤츠를 출간한 전직 검사는 정치권력의 압력에 무릎을 꿇은 사건 수사를 고발했다. 이 책의 저자는 검찰이 정치검찰의 오명을 벗고 국민검찰의 모습을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건설업자와 검찰의 카르텔에서 스폰서 검사는 무죄, 그랜저 검사는 유죄다. 대형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검찰 수사를 못 믿겠다면서 도입했던 특검 수사도 국민의 눈높이를 충족시키지 못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한계 때문이다. 특검에 들어간 민간 법조인과 검찰에서 파견된 검사·수사관 사이에 적잖은 온도 차이가 있다. 검찰에서 파견된 수사관과 검사는 검사를 상대로 조사할 때 질문의 뉘앙스부터 다르다는 게 특검 조사를 받은 참고인들의 지적이다. 또 검사가 검사를 조사하는 사안은 매일 상부에 보고하게끔 돼 있다는 점도 한계다. 이런 구조 아래서 당시 법무부 차관까지 연루 의혹을 받았던 스폰서 검사 사건은 유야무야됐다.

‘벤츠 뇌물 검사’ 말고 ‘벤츠 수사 검사’는 검찰에 정녕 없단 말인가? 지금도 어디선가는 부패의 변종을 키우는 새로운 진화가 진행되고 있다. 부패 카르텔은 점점 더 공고하게 다져지고 또 다른 카르텔들이 생겨난다. 동물의 한 종(種)으로서 인간의 심리는 1만 년 전에 거의 진화를 멈추었다는 게 진화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된 부패의 심리는 지금까지도 진화를 거듭하는 중이다. 나의 친구는 버스에 다쳐 의식불명이다. 스폰서와 그랜저, 급기야 벤츠에 다친 검찰도 의식불명이 될까 걱정이다. 부패의 진화를 누가 제어할 것인가?



강성남 1992년 서울대 행정학 박사 학위를 딴 뒤 대학·국회·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저서로 『부정부패의 사회학』 『행정변동론』 등이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