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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성체줄기세포 첫 발견 … 골수이식 치료 새 장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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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호 28면

‘어려울 때 희망을 주는 사람’이란 뜻의 레인메이커(Rainmaker)로 불리는 미국 권투선수가 있다. 보이드 멜슨. 명문 웨스트포인트(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올해 30세의 그는 생도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2005년 아마추어 미국 챔피언, 세계 랭킹 5위를 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엔 국가대표로도 선발됐었다. (부상 때문에 링에 오르진 못했다) 그의 이름이 유난히 기억되는 이유는 단 하나, 경기 수입을 모두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내놓는 아름다운 청년이기 때문이다. 전액을 ‘줄기세포 임상시험을 위한 NGO(http://www.justadollarplease.org)에 기부한다.

송기원의 생명과 과학 희망의 줄기세포

그 운명은 멜슨이 생도 시절 다이빙 부상으로 척추가 마비돼 10살 때부터 휠체어에 의지해 온 소녀 크리스천 자카그니노를 연인으로 만나면서 시작됐다. 그는 그녀와 척추 손상을 입은 상이군인들이 다시 걸을 수 있도록 희망을 일구는 것을 인생과 권투의 목표로 삼고 2010년 프로권투로 진출했다.

우리 몸은 수백 조, 200 여 종의 세포로 구성돼 있다. 배아줄기세포(사진)가 그를 비롯한 우리에게 희망인 이유는 200 여 종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능 줄기세포’라고도 불린다. 이 세포를 손상된 신체 부위에 이식하면 그 조직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화나 사고로 뇌 신경 세포가 손상돼 기능을 잃었을 때 그 주위에 배아줄기세포를 이식시켜 새 신경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다면 뇌 기능이 되살아날 수도 있다. 멜슨이 가졌던 희망도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11월 15일 멜슨과 같은 소망을 품고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지원하는 많은 이들에게 암울한 뉴스가 전해졌다. 줄기세포 치료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인 미국의 제논사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 하에 준비 중이던 척수마비 환자에 대한 배아줄기세포 치료제 임상시험을 중단하고 그 치료를 포기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왜 막대한 시장 가능성이 있고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줄기세포 연구의 걸음이 이렇게 더디고 힘들까? 줄기세포의 가능성엔 모든 과학자들이 동의하지만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줄기세포는 대개 세포 증식이 매우 왕성해 이식된 뒤 계속 증식해 종양이나 암을 생성할 가능성이 높다. 인체에 적용하려면 효능과 안전을 입증하는 다단계 임상시험이 필수인데, 생체 내 분화를 조절하는 신호전달 물질들의 분자생물학적 환경이 사람마다 달라 이 단계를 밟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다. 또 현재의 생명과학연구 수준은 줄기세포가 몸에 주입됐을 때 200여 인간 세포종 중 어떤 세포로 분화할지 예측하고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살아있는 줄기세포를 직접 주입하는 과정에서 바이러스나 병원체에 감염되지 않게 막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런 문제들이 줄기세포 연구와 이를 치료제로 개발하는 데 걸림돌이다. 포기할 수는 없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떻게 줄기세포가 분화하고 기능이 결정되는지와 같은 기본적 생명현상에 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하는 것이다.

‘황우석 사태’를 겪은 한국에선 줄기세포라면 배아줄기세포를 떠올리지만 사실 줄기세포 연구의 시작은 성체줄기세포다. 수정란의 초기 배아에서 얻을 수 있는 배아줄기세포와는 달리 성체줄기세포는 분화 종료 뒤 조직의 특정 세포만 일관되게 만든다. 예를 들어 목욕할 때 밀어도 밀어도 나오는 때는 계속 죽어 나오는 피부세포들인데 이는 피부줄기세포가 계속 새 피부세포를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몸 대부분 조직은 계속 구성 세포를 재생산할 수 있는 성체줄기세포를 갖고 있다.

성체줄기세포는 1963년 캐나다 토론토 대학 혈액학과의 매컬로크 교수와 물리학과 틸 교수의 공동연구로 발견됐다. 두 사람은 방사선을 쪼인 쥐에 골수세포를 주입해 지라에서 새 세포들이 자라는 것을 확인했다. 이로부터 골수에 새로운 혈액세포들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줄기세포가 있다는 게 발견됐다. 그때는 배아줄기세포의 존재가 알려지기 전이어서 성체줄기세포를 그냥 줄기세포라 명명했다. 이런 성체줄기세포의 원리를 응용해 골수 이식이 가능해졌다.

윤리적인 이유 이외에 최근 성체줄기세포가 각광을 받는 이유는, 이 세포가 배아줄기세포처럼 신체 내 모든 종류의 세포로 분화되지는 않지만 특정 조건 아래 배양하면 원래 성체줄기세포가 만들던 세포가 아닌 다른 세포로 분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런 기능을 이용해 현재 지방 흡입 등으로 빼낸 뱃살의 지방성체줄기세포를 신경이나 다른 조직 세포로 분화시키는 실험이 진행 중이다. 이런 성체줄기세포는 자기 몸에서 나온 것이어서 면역 거부 반응도 없다. 그렇지만 성체줄기세포도 배아줄기세포를 치료에 이용하기 위해 극복해야 하는, 앞에서 말한 동일한 문제점을 여전히 갖고 있다.

멜슨의 지순한 사랑처럼 줄기세포가 허망이 아닌 진짜 희망이 되려면 줄기세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조급하지 않으며, 참고 기다리는 ‘사랑’의 마음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송기원 연세대 이과대학 생화학과 교수, 『분자세포생물학』 을 공동 번역했으며 『멋진 신세계와 판도라 상자』를 공동 저술했다. 현재 대한여성과학기술인회 이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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