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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돈의 전쟁 승리” 떨고있는 유럽 대륙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그리스·이탈리아 등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의 재정위기가 걷히지 않고 있는 가운데 ‘유럽의 구세주’ 역할을 하고 있는 독일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위기 해소를 위해서는 독일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면서도 한편으로는 독일에 끌려다니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여 년 만에 ‘독일 공포증(Germanophobia)’이 다시 유럽 대륙을 휩쓸 기세다.

 심지어 일부 영국 타블로이드 신문은 유로화의 위기가 나머지 유럽을 지배하기 위한 독일의 음모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한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의 우파 성향 일간지 ABC는 최근 ‘유럽의 독일화’에 대해 보도했다. 독일이 제3차 대전(돈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둬가고 있다고 비꼰 기자도 있다.

 위기 돌파 해법을 놓고 독일과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프랑스는 독일의 재부상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야당인 좌파 사회당의 아르노 몬테부르 의원은 지난달 30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이웃 나라들의 폐허 위에 독일의 부를 쌓기 위해 유로화를 죽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메르켈의 비스마르크식 정책을 통해 독일 국가주의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고 하기도 했다.

 사회당 대선 후보인 프랑수아 올랑드는 최근 “메르켈이 결정하면 사르코지가 따라가는 방식이 아니라, 더 균형 잡힌 양국 관계가 필요하다”고 쏘아붙였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주도권을 메르켈 총리에게 빼앗겼다는 비난이다. 올랑드와 사르코지 대통령은 내년 4월 대선(결선은 5월)을 앞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이고 있다. 올랑드의 발언은 독일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데 대한 프랑스인들의 저항감을 대변하면서 표밭을 의식한 노림수라는 분석이다.

 “독일이 권력을 휘두르는 것보다 행동에 나서지 않는 것이 더 두렵다”(라도슬라프 시코르스키 폴란드 외무장관의 지난달 발언)는 시각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프랑스처럼 다른 유럽 국가들도 독일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다.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스페인·포르투갈·이탈리아·그리스는 독일이 자국에 내리는 ‘지침’을 지나친 간섭으로 받아들이며 거부감을 표시하고 있다. 독일의 지원을 현대판 마셜 플랜(미국의 2차 대전 후 서유럽 재건 계획)에 비유하기도 한다. 독일인이 이끄는 유럽연합(EU) 태스크포스팀이 지난 10월 경제 개혁에 대한 기술적인 조언을 해주기 위해 그리스를 방문했을 때 현지에서는 이 팀을 ‘가울라이터(Gauleiter· 독일 나치 정권이 점령한 지역 정부의 지도자)’라고 부르기도 했다.

한경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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