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메가머저의 명과암] 下. 성패 사례 및 새 조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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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미국의 크라이슬러와 독일의 다임러-벤츠의 합병으로 탄생한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요즘 시름에 잠겨있다. 합병 이후의 '성적표' 가 영 신통찮기 때문이다.

주가는 올 1월에 비해 29%나 하락한 상태다. 양사의 시가총액이 5백30억달러로 합병전 다임러-벤츠 한 회사(5백70억달러)에도 못미친다.

합병 당시 "세계에서 가장 수익성 높은 자동차회사를 만들겠다" 며 호언했던 위르겐 슈렘프 회장은 고개도 못들고 있다.

부진의 주원인은 미국내 영업을 담당하는 크라이슬러측의 고전이다. 스테디셀러였던 미니밴, 지프 등이 혼다등이 내놓는 새 모델에 계속 밀리고 있다. 올 2분기 영업 이익은 23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9%가 감소했다.

다임러 크라이슬러는 급기야 올해 크라이슬러의 영업비용을 20억달러 삭감하고 앞으로 3년간 전체 회사의 간접 비용을 25% 축소할 것 등을 고려하고 있다.

◇ 메가머저의 그늘〓브리티시 텔레콤, MCI 등 50개 통신회사가 합작해 만든 '콘서트' 와 스프린트, 도이체텔레콤, 프랑스텔레콤이 함께 설립한 국제 통신사업체 '글로벌원' 은 좀처럼 사업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다국적 사업 구성원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의견 조율이 어렵기 때문이다.

스탠더드 앤 푸어스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간 인수.합병이 꾸준히 늘어난 88~98년간 컴퓨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장거리전화사업 분야의 상위 5개사 시장 점유율이 15~30% 떨어졌다.

시장 지배력 강화와 효율성 제고라는 합병의 장점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정부의 독점 규제, 경쟁사들의 견제 등 외적 요인은 물론 합병후 기업문화 차이, 경영진 불화, 인력 감축을 우려한 종업원들의 반발 등 내적 요인도 크게 작용한다.

올들어 스페인 최대 포털 사이트인 테라가 라이코스를 인수했고, 프랑스의 통신회사인 비방디가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갖고 있는 시그램을 매입했다.

이같은 글로벌 메가머저는 콘텐츠와 배급망, 인터넷과 통신의 환상적 결합이라는 격찬을 받았다.

그러나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들 기업의 인수.합병(M&A)이 내실있는 성공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기술.문화.인력의 통합이 선결과제라고 지적했다.

AOL 가입자에게 타임워너 콘텐츠를 제공하는 방법, 타임워너 케이블 가입자의 AOL 인터넷 접속 서비스 이용법 등 대(對)고객 창구 일원화 과정에서 해결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는 것이다.

마케팅 정보의 통합.관리, 기업문화의 융화 등도 쉽지 않은 문제다.

최근 독일의 인터넷 서비스 업체 T온라인과 영국의 프리서브간 M&A 협상이 무산된 것은 이질적인 경영 문화 때문인 것으로 풀이됐다.

◇ 합병만이 최선인가〓위험 부담이 큰 합병보다 필요한 부문에서만 힘을 합치는 제휴를 선호하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일본 가와사키 제철은 세계 3위의 철강 메이커인 프랑스 위지노와 자동차 강판 분야에서 제휴했다.

AOL은 일본 시장 진출을 위해 i-모드로 일본 무선통신 시장을 석권한 NTT도코모와 제휴를 추진중이다.

정보기술(IT)후발주자인 도시바는 미국의 방산업체 록히드 마틴과 합작사를 설립, 기업 정보시스템 구축 사업에 뒤어들 예정이다.

최근 들어서는 유사 업종의 기업들이 부품.설비 구매비용을 줄이기 위해 기업간 전자상거래(B2B)사이트를 구축하는 게 대세다.

독일 루프트한자.캐나다항공.일본항공 등 전세계 13개 항공사는 8월초부터 상품.서비스를 공동구매하는 에어로 익스체인지 사이트를 열 계획이다.

유럽 최대 전력회사인 프랑스의 엘렉트리시테 드 프랑스, 독일의 전력생산업체 RWE 등 유럽 8개국 공공서비스 업체도 대규모 B2B 망을 구축한다고 밝혔다.

메이저 석유사인 로열더치-셸, BP아모코는 시추장비.정제설비 등을 공동 구매하는 사이트를 만들어 5~30%의 비용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제휴도 새로운 대안으로 각광받고 있다. 야후와 펩시콜라, AOL과 코카콜라는 서로의 브랜드를 홍보해주는 마케팅 협력을 약속했다.

때로는 합종연횡에 초연한 '홀로서기' 가 유효할 때도 있다.

올초 그락소웰컴과 스미스클라인비첨이 합병후 회사 통합 작업에 골몰할 무렵 또 다른 대형 제약회사 머크는 공격적인 단독 마케팅으로 매출을 18%가량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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