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나눔이야기] “새터민인 나, 자원봉사로 자신감 찾았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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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안성 한겨레중고등학교 사랑실천봉사단 학생들은 매달 첫째·셋째 일요일 학교 인근 마을 독거노인들의 목욕을 돕고 학교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대접한다.

저는 새터민 여고생입니다. 19살이던 2009년 5월 남한에 왔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북한에서 중국을 거쳐 남한에 도착하는데 1년 6개월이나 걸렸습니다. 새터민들의 남한 정착을 돕는 하나원에서 연수를 마치고 2009년 9월 일반고등학교에 1학년으로 입학했습니다. 두 살이나 어린 친구들이었지만 저를 편견 없이 대해줬습니다. 하지만 전 친구들의 대화에 끼기도 어려웠고,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도 힘에 부쳤습니다. 결국 지난해 3월 새터민 청소년들이 모여 공부하는 경기도 안성의 한겨레중고등학교로 전학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새터민을 도와줘야만하는 대상자로만 여깁니다.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사랑실천봉사단’에서 1년째 활동하면서 생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사랑실천봉사단은 우리 학교 학생 25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저와 친구들은 매달 첫째·셋째 주 일요일에 학교 근처 극락·신대·한실·열원마을의 독거노인 7, 8명을 모시고 대중목욕탕에 가서 목욕을 도와드립니다. 처음엔 쑥스러웠는데 우리를 친손자·손녀처럼 대해주시는 어르신들 덕분에 어색함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목욕을 도와드릴 때면 북한에 계신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나기도 합니다. 우리 학교는 기숙학교이기 때문에 주말에도 급식이 나옵니다. 그래서 목욕이 끝나면 어르신들을 학교로 모시고 와서 점심식사를 대접합니다. 우리가 해드리는 게 그리 많지 않은데, 할머니·할아버지가 “고맙다”고 말씀해 주실 때면 마음이 뭉클해집니다.

사실 마을 어르신들께 우리가 더 고마운 일이 많습니다. 처음 우리 학교가 설립될 때 일부 마을 주민들이 반대를 했었다고 합니다. 새로운 꿈을 안고 남한으로 온 우리에게 그건 마음의 큰 짐이었고 항상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극락마을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우리를 불러 식사 대접도 해주고 따뜻하게 대해 주셨습니다. 마을 어르신들께 받은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자고 다짐했습니다.

북한에 있을 때는 ‘봉사’라는 단어를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남한에 와서 누군가를 돕는 것이 ‘봉사’라는 것을 알게 됐고, 요즘 친구들과 그 봉사의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지난 9월에는 ‘제13회 푸르덴셜 전국중고생자원봉사대회’에 우리 사랑실천봉사단의 활동 이야기를 써보내 은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시상식 참가를 위해 전국 각지에서 모인 또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봉사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시 한 번 다짐했습니다.

남한에 와서 한동안은 새터민에 대한 불편한 시선 때문에 늘 자신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다른 사람을 돕고 있다는 생각을 한 뒤부터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자원봉사는 저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자신감과 삶의 의지를 심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적극성이 생겼고, 인사성도 밝아졌습니다. 그래서 새터민 뿐 아니라 자신감이 떨어지는 사람들에게 자원봉사를 꼭 해보도록 추천합니다.

전민지(21·여·가명·경기도 안성시 한겨레중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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