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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마을 옹진군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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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정기환
경기·인천 취재팀장

인천 옹진군은 전남 신안군처럼 군청은 뭍에 있지만 주민은 모두 섬에 산다. 연평·백령·굴업·덕적도 등 26개 유인도와 74개 무인도다.

 이런 옹진군이 최근 인천을 떠나 경기도로 적(籍)을 옮기겠다고 선언해 시끌시끌하다. 시민단체가 요구한 선거공약 실천을 위해 인천시가 섬 주민들의 숙원사업인 관광단지 개발을 가로막고 있다는 불만에서다. 성사 여부를 떠나 “인천시는 섬 사람들의 고단한 삶을 알기나 하는가”라는 절규가 울림을 자아냈다. 인천시의회에서는 ‘(옹진)군 지원 예산 삭감’이 거론되기도 했다. 8일 인천에서는 처음으로 300여 명의 섬 주민이 참가하는 가두시위가 벌어질 예정이다.

 옹진군의 반란은 굴업도 개발 논란에서 비롯됐다.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90㎞ 떨어진 이 섬에는 1.7㎢의 면적에 16가구 27명이 살고 있다. 예전에는 땅콩 농사가 잘돼 ‘땅콩섬’으로도 불렸으나 지금은 어업과 염소 방목 등이 생업이다.

 2007년 이 섬의 대부분을 사들인 한 대기업이 관광호텔·콘도미니엄골프장·요트장·섬 생태원 등을 갖춘 선진국형 해양리조트를 개발하겠다고 나섰다. 군과 이 일대 섬 주민들은 굴러들어온 3500억원대 개발 투자에 반색했다. 그러나 곧이어 시민·환경단체들의 반대 운동에도 불이 붙었다. ‘굴업도를 지키는 시민단체 연석회의’에는 가톨릭환경연대·우이령보존회·인천녹색연합 등 15개 단체가 참여해 있다. 이들은 굴업도에 매·먹구렁이·황조롱이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과 천연기념물이 서식해 생태적 가치가 풍부하다며 개발에 반대했다.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인천지역 시민단체들까지 가세한 야권연대의 송영길 후보는 굴업도 개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가 당선되자 사업 시행사는 옹진군에 제출해놓았던 사업신청서를 스스로 거둬 들였다. 그러자 덕적면 일대 섬 주민들이 나섰다. 인천시의회에 굴업도 개발 청원을 내고 인천시청에 몰려와 사업 추진을 촉구했다. 이들은 “무조건적 개발 저지가 환경단체에는 훈장이 될지 모르지만 주민들에게는 재앙”이라며 “도시인들의 생태관광을 위해 우리 손발을 묶느냐”고 주장했다. 갈등 조정역의 정무부시장이 굴업도를 다녀온 뒤로 옹진군의 의견이 수렴되는 듯했다. 10월 말에는 시행사가 사업신청서를 옹진군에 다시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 달여 만에 상황은 급반전됐다. 지난달 28일 인천시 주무국장이 “굴업도에 골프장은 안 된다”고 선을 긋고 나왔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야권연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중순 송도국제병원을 반대해온 지역 시민단체들은 송 시장을 만나 “설립 추진 일정을 중단시키겠다”는 약속도 받아냈다.

 인천시가 돌아선 날 조윤길 옹진군수는 “일부 단체의 반대에 부닥쳐 섬 주민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처사”라며 “옹진군 나머지 섬들의 장래도 암담하다”고 말했다. 길을 잃은 정치가 지방에서도 비정부기구(NGO)를 정치적으로 오염시키고 주민자치까지 흔들고 있다.

정기환 경기·인천 취재팀장